절에 들어 가는 문의 종류
절에 들어 가는 문의 종류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신령스런 산을 숭배해 왔으며 그 영산에는
불보살님들이 영원히 머물며 법을 설하고 있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신라 시대부터 많은 사찰이 名山에 건립되기 시작하여
산이 곧 사찰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으며, 산은 불보살들의
거주처일 뿐만아니라 출가 사문들이 머물면서 수행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산문은 바로 불문(佛門)이오, 출가 승려가 위없는
큰 진리를깨닫기 위해 들어서는 문이기도 하다. 나아가 사찰로
들어서는 문인 산문은 세속을 벗어나 성스러운 공간으로 들어서는
중요한 출입 공간이며, 불보살이 상주하는 산(절)을 보호하고
성역화하는 경계의 공간이기도 하다.
자, 그러면 그 산문 하나하나를 살펴보기로 하자.
사찰의 중심인 큰 법당에 들어서려면 일주문(一柱門), 금강문
(金剛門), 천왕문(天王門), 해탈문(解脫門)을 지나야 하는데 이러한
문들을 일컬어 산문(山門)이라 한다.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전설 속의 산으로 수미산(須彌山)이 있다.
실제 지며으로는 히말라야의 카일라스 성산을 지칭한다.
이 수미산은 산스크리트어 수메루(sumeru)에서 소리번역한
말로서 묘고(妙高)를 뜻한다. 높을뿐더러 신묘해서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이다. 이 수미산 정상에 신들이 노니는 터전이 있고 다시
그 위를 한참 올라간 공간에 불보살의 나라가 있다.
그러니까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 꼭대기의 하늘, 그 하늘 위의
수많은 하늘마저 벗어난 곳에 불보살님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사찰은 이렇게 신화 상에 나타난 불세계를 보여 주고 있으며,
그곳으로 진입하는 공간 요소요소에 여러 산문을 건립하여 그 문들을
단계별로 하나하나 거치면서 성스러운 공간으로 점차 가까이
들어서는 과정을 상징한다.
일주문은 사찰의 입구이다.
속세에세 벗어나 부처님의 품 안인 진리의 대지로 들어서는 첫 관문이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일주문의 기둥이 사각형 구도의 각 꼭지점에
네 개가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기둥이 한 줄로 늘어서 있다는
것이다. 범어사를 비롯한 일부 사찰의 경우엔 네 개의 기둥이 있지만,
그것 역시 일렬로 쭉 줄지어 서서 일주문의 상징적 의미를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
일주문은 우리의 깨끗한 마음인, 흔들리지 않는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이런 마음의 바탕에 서 있으니 기둥 두 개만으로도 당당히 지붕을 이고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불자들은 여기서 마음을 가다듬고
법당 쪽을 향해서 반배한 후에 단정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한 발 한 발 발길을 옮긴다.
일주문을 지나면 사찰 진입 공간의 중간쯤에 천왕문이 나타난다.
천왕문은 부처님과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건물로
수미산의 중턱에 해당한다.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 사방에 지켜 서서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그곳을 보호한다. 천왕문의 역할은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사찰을 보호하여 청정도량으로 만드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사천왕들이 눈을 부릅뜨고 선 것은 모두 다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사천왕은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여 거기에 상응하는 상벌을 내린다고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이건 국가건 사천왕께 참회하고
죄를 씻어줄 것을 빌면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믿어왔다.
이 천왕문의 좌우측 대문에는 금강역사(金剛力士)가 그려져 있다.
석굴암의 경우에는 입구 양쪽에 두 명의 금강역사가 버티고 서 있다.
금강역사는 무지무지한 힘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 강력한 힘으로
사천왕과 더불어 사찰을 수호하는 기능을 맡고 있다. 금강문이라는
별도의 문을 갖춘 사찰도 있는데, 여기에는 금강역사가 조각으로
조성되어 있기 마련이다.
천왕문을 조금 지나 산길을 올라가면 저만치 해탈문(解脫門)이 나타난다.
번뇌의 속된 마음을 돌려서 해탈의 세계에 이르게 한다 하여 해탈문이라
한다. 청평사의 회전문(回轉門)도 번뇌를 돌려 해탈에 이르게 한다는
뜻에서 지어진 해탈문의 일종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번뇌와 해탈,
속(俗)과 성(聖), 더러움과 깨끗함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해탈문을
불이문(不二門)이라고도 일컫는다. 그런데 불국사에 가면 자하문이
불이문을 대신한다. 이 자하문(紫霞門)과 관련하여 해탈문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 보자.
수미산 정상에는 도리천(忉利天)이 솟아 있다. 이 하늘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장소인 셈인데 일명33천이라고도 한다. 이 도리천 위에
도합 26개의 하늘나라(26天)가 층층이 쌓여 있으며 그 맨 위의 하늘의
세계마저 뛰어넘어 있는 것이 부처님의 세계이다.
불국사에는 부처님의 세계인 불국이 아름답게 조형화되어 있다.
지금은 그 불국의 터전으로 들어서려면 옆으로 빙 돌아서 측면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원래는 거기 청운교. 백운교로 곧바로 올라가
자하문을 지나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마주 앉아 감로의 가르침을
전하는 신성한 공간으로 진입하게 되어 있었다.
청운교와 백운교의 돌층계 계단 수는 총 33개이다. 산스크리트어로
33을 '드라야 트림사'라고 하는데 앞의 말 트라야를 소리번역한 것이
도리(忉利)이다. 곧 33은 33천인 도리천을 상징한다. 그 도리천 위에
큰 사찰의 불이문이 우뚝 서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원래는 도리천을 지나서 다시 그 위 창공에 층층이 솟아 있는
하늘나라를 오른 후 불국으로 진입하는 막바지에 불이문이 서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공간상에 구축해 내기란 굉장히 난해한 작업이어서
불국으로 들어가는 깨달음의 여정을 그렇게 압축적으로 조형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대다수의 전통 사찰에서 이 해탈문의 모습을 보면 누각 밑을 통과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2층 다락집 형태인 누각 밑 1층 기둥 사이로 길이
나 있어 문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2층 누각은 불법을 설하는
강당으로 쓰였다. 그래서 진입하는 쪽에서 보면 문이지만 진입하고
난 뒤 법당 쪽에서 보면 강당인 누각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낸다.
<유쾌하게 읽는 불교에서(고명석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