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두 염소
내가 먼저 물러나는 건 결국 나를 위한 길이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두 염소가 비켜주지 않고 싸우다가
함께 다리 아래로 떨어져버린 이야기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두 염소*
어느 깊은 계곡에 외나무다리가 있었습니다. 동물들이 좁고
가느다란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면 모두 조마조마한 마음이
었습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발을 헛디디거나 외나무다리가
기우뚱하면서 아래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리 아래
에는 거센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떨어지면
크게 다치거나 물살에 휩쓸려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떤 염소 한 마리가 외나무다리 근처에서풀을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반대편을 쳐다봤습니다. 그쪽에
있는 풀이 훨씬 더 싱싱하고 맛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리를
건너가기로 했죠.
외나무다리 중간쯤 갔을 때 난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맞은
편에서 건너온 다른 염소를 만난 겁니다. 비켜갈 수 없을 만큼
좁았기에 한쪽이 뒤로 물러나야 했습니다ㅣ.
"이봐, 내가 먼저 왔으니까 그쪽이 뒤로 비켜나도록 해."
"아니지, 내가 더 많이 건너왔으니 그쪽이 뒤로 물러나는게 맞지."
두 염소는 서로 먼저 건너왔다느니 많이 건너왔다느니 하면서
상대방의 양보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먼저 물러날
생각이 없었습니다. 싸움은 점점 거칠어지고 험악해졌습니다.
"정말 말이 안 통하는 염소일세. 좋게 말할 때 당장 비켜나지 못해?"
"뭐라고? 이거 아주 막무가내구먼. 어서 썩 뒤로 물러나지 못해?"
이러다간 맛있는 풀을 먹기는커녕 싸우다가 해가 떨어지게 생겼
습니다.
"야, 잘못하면 계곡물에 빠지겠다. 네가 물러나면 둘다 좋잖아?"
"내 말이. 네가 비켜나면 깨끗이 끝날 일이라고. 난 절대로 못 비켜!"
끝내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졌습니다. 뿔을 들이밀며 상대방을
밀쳐내기 시작한 겁니다.
그때였습니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던 두 염소는 몸의 균형을
잃고 함께 외나무다리 아래로 고꾸라져버렸습니다. 깊은 계곡물에
풍덩 빠진 두 염소는 허우적거리며 물쌀에 쓸려 떠내려가다가
큰 바위에 부딪혀 죽고 말았습니다. 죽어가면서 두 염소는 똑같이
후회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내가 먼저 양보하고 비켜줄 걸...'
#운전대만 잡으면 난폭해지는 이유#
운전하다 보면 아찔할 때가 참 많습니다. 충분히 여유가 있다 싶어
방향지시등을 켜고 차로를 변경하려 하면 멀찍이 있던 뒤차가 갑
자기 속력을 내면서 바짝 따라붙습니다. 심지어 경적을 울리거나
전조등을 깜빡거리며 들어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말이 신
호지 위협입니다.
길을 잘 알거나 내비게이션에 주의를 기울인 채 운전하면 괜찮
지만, 운전 중에 잠깐 다른 생각에 잠겨 있다가 아차 싶어 이정표
를 확인하면 길을 놓친 경우가 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갑자기 차
로를 바꾸려 하면 순순히 양보해주는 차가 없어 애를 먹기도 합니다.
실생활에서 양보와 배려가 가장 필요한 게 운전할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금만 더 양보하고 배려하면 교통사고도 많이 감소
할뿐더러 운전하면서 생길 수 있는 다툼과 스트레스도 상당히 줄
어들 겁니다.
다른 차가 끼어드는 걸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면서 정작 자신은
조금만 밀리면 차로를 바꿔 요리조리 위험하게 운전한다고 대단히
빨리 가는 것도 아닙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을 측정하면 충분히 양보하면서 여유 있
게 운전하는 사람과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양보와 배려가 몸에
배지 않아 그렇게 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평소에는 매우 온순한데 차에 타서 핸들만 잡으면 헐크처럼 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동차 경주하듯 거칠게 운전하면서 조금
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창문을 내리고 상대방 운전자에게 욕설을
퍼붓습니다.
젊은 사람이 한참이나 나이 많은 어른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내
뱉고 삿대질을 합니다. 그러고도 분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보복 운
전을 하기도 하고 흉기를 들고 달려와 폭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도로 위의 폭력과 난폭 행위에 대해 처벌이 강화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핸들을 잡으면 평화보다 위협을 더 자주 경험합니다.
핸들만 잡으면 양보를 잊은 채 과격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는 어떨까요?
사람들은 타고난 본능을 억제하며 살아갑니다. 가정에서도 학교
에서도 직장에서도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 수 없습니다. 정해진
규범과 조건 등에 맞춰 살 수밖에 없죠.
대인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 선배, 상사의 눈치를 살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밖으로 분출되지 못한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자동차는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
다. 익명성이 보장된 자신만의 공간이죠.
좋아하는 음악을 얼마든지 크게 들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라도 갈 수 있으며., 내고 싶은 속도만큼 달리며 쾌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도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않는 자유의 영역입니다. 타인과
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동차와 자동차라는 대등한
관계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죠.
따라서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한 대의 자동차로
인식할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분출되지 못했던 억눌린
감정들, 즉 흥분, 분노, 모멸감, 무시 등 부정적인 본능들이 꿈틀거
리는 것입니다.
다른 차가 느닷없이 자기 차 앞으로 끼어들려 한다든지, 뒤차가
별안간 경적을 크게 울린다든지, 앞차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
는다든지 하는 일정한 계기만 주어지면 그동안 억눌린 감정들이
여과 없이 바로 폭발해버립니다.
상대방이 누구라도 상관없습니다.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나는 게 아
니라 자동차 대 자동차로 만나는 거니까요.
게다가 차와 차 사이의 소통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뤄지는 언
어가 아니라 소리나 불빛 같은 비언어적 장치로 이뤄집니다. 소통
능력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것이죠.
운전자들 사이에 오해와 다툼이 생기면 대화로 해결하기보다 감
정적, 기계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건 이 때문입니다.
#손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두 염소' 우화를 현대인의 삶에 적용해보면
가장 피부에 와닿는 분야가 운전이 아닐까 싶어 운전에 관한 이야
기를 해봤습니다.
실제로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롤 좁은 골목이나 시골 마을
오솔길 혹은 외진 산자락에 난 협로에서 마주 오는 차와 맞닥뜨리
면 곤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느 한쪽이 두 차가 비켜갈 만큼 넉넉한 공간이 나올 때까지 뒤
로 물러나줘야만 평화롭게 해결이 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먼저
물러날 걸 요구하며 강하게 대치하면 끝이 나지 않습니다. 아무도
앞으로 나갈 수 없죠.
결국 둘 다 목적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누구든 먼저 양보하는
게 가장 빨리 가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왜 이게 어려운 걸까요? 조금만 생각해봐도 뻔히 알 수
있는 걸 하지 않아서 갈등이 커지고 원치 않는 파국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비단 운전만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또는 각
종 단체나 모임 등에서 나와 타인 사이에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질
때가 많습니다.
비교적 단순한 일도 있고 다소 복잡한 일도 있지만, 결국은 먼저
양보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면 원만하게 끝
날 일인데도 자존심을 내세우며 기 싸움을 하려 드니 계속해서 평
행선 위를 걷는 겁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며 합리적으로 예측하
는 게 아니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것이죠.
'양보하면 지는 거야.'
'여기서 물러나면 나만 바보 되겠지?'
'조금만 더 버티고 밀어붙이면 내가 이길 수 있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이런 생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인관
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두고 승부를 가리는 계임 혹은 승패가 판정
나는 경기로 생각하는 것이죠. '양보=패배','고집=승리'라는 편견
에 사로잡혀 있는 겁니다.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 부모와 자녀 사
이, 형제자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을 때 먼저 양보하기보다 상대
방의 양보를 기대하거나 강요합니다. 양보하면 나만 손해를 보고
상대방에게 우습게 보일 뿐이기에 버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양보하면 두 번, 세 번 계속 양보하다가 패자가 된다고 여
깁니다. 뻔뻔스럽더라도 모질게 밀어붙이면 승리를 거머쥐고 이익
을 얻으므로 눈 딱 감고 버티는 겁니다.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 양보를 꺼리게 만드는 심리를 '손실
회피 편향(loss aversion)'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의 대니얼 카너먼은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립니다. 그가 연
구한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손실 회피 편향입니다.
사람은 대부분 내가 얻게 될 이득보다 내가 보게 될 손해에 더
주목하며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합니다. 이득으로 인한 기쁨보다
손해로 인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이죠. 기쁨은 순간이지만, 쓰라린
기억은 상당히 오래갑니다.
#내가 먼저 상다방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길을 가다가 5만 원짜리 지폐를 주웠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
무도 없습니다. 주인을 찾아주기 어렵습니다. 주머니에 돈을 넣고
집으로 왔습니다.공돈 5만 원이 생겼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생각
지도 않은 횡재에 공돈 5만 원으로 뭘 할까 궁리하니 하루 내내 즐
거웠습니다.
하루는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갔는데, 분명히 가지고 나온 돈 5
만 원이 주머니에 없습니다. 어디선가 잃어버린 게 확실합니다. 아
무리 찾아봐도 돈이 없어서 물건을 사지 못하고 뒤돌아 나왔습니
다.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우울한 기분이 며칠 이상 계속
되었습니다.
5만 원을 주워서 얻게 된 기쁨은 오래가지 않지만 , 5만 원을 잃
어버려서 생겨난 허탈감과 울적함은 꽤 오래갑니다. 이득보다 손
해가 감정과 기억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큰 것이죠..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100만 원을 벌고 뒷면이 나오면 50
만 원을 잃는 게임이 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까요? 대부분 게임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100만 원의 이익보다
50만 원의 손해를 더 크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이 50%씩이라면 한 번은 앞면이 나오
고 한 번은 뒷면이 나왔을 때 게임 참가자는 50만 원을 벌 수 있습
니다. 기대이익이 큰 게임이죠.
그러나 만에 하나 뒷면이 나오거나 만회하려고 한 번 더 했는데
도 뒷면이 나온다면 100만 원을 잃습니다. 매우 적은 확률임에도
사람들은 불길한 확률이 나올 걸 염려합니다. 그래서 아예 게임을
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승패를 가르는 치열한 경기가 아닙니다. 당시엔 굉장한
일 같아도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일이 많습니다. 뒤로 물러서면
큰 낭패를 볼 것 같지만 나중에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내가 먼저 물러서고 양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면, 지
금 당장 손해인 것 같아도 결국은 그 영향이 내게 긍정적 결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죽어도 양보할 수 없다며 버티고 싸워 봐야 나만 손해입니다. 인
생은 길게 봐야 합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두 염소 중 한 마리가 이렇게 말했더라면
어땠을까요?
"내가 뒤로 물러날 테니 네가 알고 있는 맛있고 싱싱한 풀 있는
곳 한 군데를 알려줄래?"
그랬더라면 맞은편 염소도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요?
"좋아, 알려주지. 그리고 다음에 외나무다리에서 또 만나면 그땐
내가 먼저 물러날게."
두 염소 모두 죽지 않고 맛있고 싱싱한 풀을 나눠 먹는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작은 것 하나를 더 얻으려다 큰 것까지 전부
잃게 되는 건 알량한 이기심과 욕심 때문입니다.
##비교저 단순한 일도 있고 다소 복잡한 일도 있지만, 결국은
먼저 양보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면
원만하게 끝날 일인데도, 자존심을 내세우며 기 싸움을 하려
드니 계속해서 평행선 위를 걷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