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사슴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열린 마음
육지에서의 위협만 경계하고 바다는 안전하다고 믿은
외눈박이 사슴의 비극적인 이야기
*외눈박이 사슴*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사슴이 있었습니다. 예전엔 아주
잘생기고 시력도 좋은 멋쟁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꾼이 쏜 화살에 맞는 바람에 목숨은 간신히 구했으나
한쪽 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상심이 컸지만 그래도 그만한
게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바닷가에서 풀을 뜯어 먹었습니다. 풀이 잔뜩 자라
있었지만 아무도 없어 실컷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무서운 짐승이나 사냥꾼이 나타날지 몰라 철저히 경계
해야 했습니다. 외눈박이 사슴은 어떻게 주변을 살피는 게
가장 좋을지 궁리했습니다.
'그래, 못 쓰게 된 눈을 바다 쪽에 두고 잘 보이는 눈으로
숲을 경계하는 게 좋겠어.'
늑대나 사자 혹은 사냥꾼이 온다면 분명히 육지에서 올 테니
숲을 경계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망망대해 위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위험도 없는 것 같았죠.
사슴은 성한 눈으로 숲을 바라보며 맛있는 풀을 신나게
뜯어 먹었습니다. 하지만 사슴이 넋을 놓고 풀을 뜯는 사이
바다 위에 배 한 척이 나타났습니다.
배에선 낚시꾼들이 물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낚시꾼이 바닷가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사슴을 발견했
습니다. 물고기보다 훨씬 크고 맛있는 사슴을 잡아먹는 게
낫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활을 들어 사슴에게
화살을 쏘았습니다. 화살은 정확하게 사슴을 향해 날아가
명중했습니다.
바다와 육지에 아무런 위험도 없다고 믿으며 정신없이
풀을 뜯고 있던 사슴은 화살을 맞고 죽어갔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걸 포기한 듯 중얼거렸습니다.
"숲은 위험하다고 생각해 잘 보이는 눈으로 잔뜩 경계하고
있었으면서 훨씬 위험한 바다는 안전하다고 믿고 보이지 않는
눈에만 의존하고 있었으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었구나."
그날 밤 낚시꾼들은 물고기 대신 횡재한 사슴고기를 구워
먹으며 마음껏 포식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외눈박이 사슴처럼 살아간다#
이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외눈박이 사슴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며 혀를 찹니다.
"쯧즛, 한쪽 눈이 안 보이더라도 다른 쪽 눈으로 두리번거리며
충분히 경계했어야지."
"두루두루 살펴야지. 보이는 게 다라고 생각하며 안이하게 있었
으니 그런 꼴을 당하지."
모두 맞는 말입니다. 사슴이 비참한 종말을 맞은 건 외눈박이였
기 때문이 아니라 한쪽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믿곤 보이지 않는
곳에 도사린 위험들을 간과한 데 있었습니다. 위험은 어디에나 있
다는 생각으로 철저히 경계했다면 막을 수 있는 비극이었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많은 사람이 외눈박이 사슴처럼 살아갑니
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
으며 사는 겁니다.
보지 못하는 것, 듣지 못하는 것, 믿지 못하는 것 속에 진실이 있
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며 삽니다. 보고 있는 것, 듣고 있는 것,
믿고 있는 것 속에 거짓과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많은 사회는 언제나 대립과 긴장이 넘쳐나고 곳곳
에 위험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평화롭지 않고 늘 살벌한 분위기가
넘쳐납니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
는 무시하는 경향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믿음과 신념에 부합되는 정보나 근거를 발견하면
관대한 태도로 즉각 받아들이지만, 상반되는 정보나 근거를 접하
면 적대적이거나 인색한 태도를 보이며 통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겁니다.
"공부는 안 하고 또 만화책이나 보고 있냐?"
"엄마, 이건 공부에 도움이 되는 학습 만화라니까."
"시끄러워.만화면 만화지.공부에 도움 되는 만화가 어디 있어?"
만화는 오락일 뿐이며 학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
엄마는 만화가 집중력을 높인다든지, 두뇌 발달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든지, 입체적 사고를 가능하게 해준다든지 하는 정보를 접하
면 무시하거나 사실이 아닌 왜곡된 정보일 거라고 단정합니다.
"A사에서 디자인을 파격적으로 바꾸고 가격도 인하한 새 제품이
곧 나온다고 합니다."
"신경 쓸 거 없어요. 아무리 그래 봐야 품질은 우리가 최고니까
끄덕없습니다."
"그래도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A사의 품질도 많이 향상
된 것 같습니다."
"아, 글쎄 그게 다 헛소문이라니까. 자기들이 무슨 수로 우리 품
질 수준을 따라오나."
경쟁업체가 자사 제품에 위협이 될 만한 혁신적인 신제품을 출
시한다는 정보를 듣고도 애써 무시하는 사장은 자사 제품의 품질
이 업계 최고이며 A사는 절대로 따라올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습
니다. 기존의 신념만 가지고 미래까지 예단하는 겁니다. 시장은 그
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다음 후회해봐야 이미 외눈박이
사슴 신세입니다.
#확증편향에 빠진 사람들#
객관적 증거와 과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 중에도 경험이나 직관 등에 의존하다가 일을 그
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용의자 가운데 유독 의심이 가는 사람의 정보에만 눈길을 주는
경찰관이 있고, 원고와 피고 중 자신을 향해 좀 더 깍듯하고 애절
하게 진술한 사람의 정보를 많이 참작하는 판사가 있습니다.
실제로 법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판사들의
확증편향이 일반인들보다 더 크게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백지 상
태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고 선입관에 의존해
일을 처리하려다 보면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쉽게 확증편향에 빠
질 수 있습니다.
확증편향에 빠진 사람들은 위험 경고가 있어도 주목하지 않습니
다. 안전하다는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해주는 자료나 증거에만 눈
길이 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시각각 변하고 언제든 돌발변수가 있을 수 있는 주식시장에서
애널리스트들은 수많은 정보를 모으고 분석합니다. 그러면서 합리
적으로 종합해 내려고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경험과 신념에 사로
잡혀 정보를 일정한 방향으로 혹은 의도된 결론을 향해 조작하기
도 합니다.
확증편향을 가진 사람 중 일부는 자신의 믿음과 신념에 일치하
지 않는 정보를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차원을 넘어서서 정보
를 자신의 믿음과 신념에 일치하도록 왜곡하고 조작하지만, 인정
하려 하지 않습니다. 믿음과 신념이 신앙처럼 굳어진 겁니다.
언론이나 SNS를 통해 한 번 잘못된 기사가 나가면 그 기사를 토
대로 평소 좋아하지 않았던 인물이나 제품 또는 사건 등에 확고한
편견을 갖게 됩니다.
이후 해당 보도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게 판명되고 오보에 대한
사과와 정정이 이뤄졌음에도 여전히 잘못된 기사를 사실이라고 믿고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확고부동한 증언과 명약관화한 증거
가 계속해서 제시되더라도 믿지 않습니다.
모든 정보는 확증편향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객관적 사실이 편향된 신념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가장 심각한 건 정치의 영역입니다. 여당과 야당, 진보정당과 보
수정당은 극단적인 전선을 형성합니다. 기본적인 상식과 교양과
예절마저도 저버리기 일쑤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다 보
니 확증편향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우리 편 잘못은 무슨 논리를 대서라도 감싸주고 덮어주며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합니다. 반면 상대편 잘못은 사소한 것까지 들춰
내 최대한 부풀려 손가락질하고 단죄합니다. 이들에 휘둘려 국민
도 두 편으로 나뉩니다. 선거철만 되면 SNS는 전쟁터로 변합니다.
상대방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잘한 게 있어도 돌
아오는 건 칭찬이 아니라 음모론이나 비아냥뿐입니다. TV에서 정
치인들이 나와 토론하는 걸 보면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
도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내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왜 사람들은 확증편향에 쉽게 빠지는 걸까요? 공부도 많이 하고,
인생 경험도 풍부하며,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까지 확증편
향에 빠져 점점 외눈박이 사슴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대체 왜
저럴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확증편향에 쉽게 빠지는 건 오랫동안 지녀온 믿음과
신념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 틀
렸다는 걸 스스로 시인하기 어려운 겁니다.
체면과 위신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내 믿음
과 신념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지고 우스
운 사람으로 전락한다고 생각하니까 더욱 인정을 못 하는 겁니다.
남은 방법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
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걸 좋아합니다. 정치적 성
향, 종교, 경제적 수준, 학연 등에서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
나는 게 편한 거죠.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건 불
편하게 느낍니다. 한마디로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듣기보다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세상을 한쪽 눈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나 국가는
어떻게 될까요? 평화와 행복이 넘쳐나기보다 불안과 위험이 넘실
대는 스트레스 공동체가 될 게 뻔합니다.
어떻게 하면 확증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나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 듣지 못하는 것, 믿지 못하는 것에 진실이 있을 수 있다
는 걸 인정하는 겁니다.
따라서 나는 언제든 틀릴 수 있고, 잘못 볼 수 있으면, 잘못 생각
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객관적 사실과 누구나 인정하는 진실 앞에서 고개 숙이는 건 체
면이 깍이는 일도 위신이 떨어지는 일도 우스운 사람으로 전락하
는 일도 아닙니다.
정말 간단한 일입니다. 그것 때문에 누구나 나를 얕잡아보지 않
습니다. 오히려 용기에 박수를 보낼 겁니다.
'그래, 두 눈이 멀쩡할 때도 사냥꾼을 보지 못해 화살에 맞아 한
쪽 눈을 잃었는데, 남은 한쪽 눈만 가지고 어떻게 주변 경계를 제
대로 할 수 있겠나. 조금씩 먹어 가면서 전후좌우를 철저히 경계하
다가 적당히 먹으면 빨리 자리를 뜨는 게 좋겠어. 나를 믿으면 안 돼.'
외눈박이 사슴이 이렇게 생각했더라면 그날의 화를 면할 수 있
었을 겁니다.
내 경험과 지식이 많고 믿음과 신념이 확고하다면, 매일 이렇게
되뇌는 건 어떨까요?
'외눈박이 사슴처럼 되지 말자. 내 눈만 가지곤 절대로 모든 것
볼 수 없어.'
**신념과 나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나는 완벽하
지 않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 듣지 못하는 것, 믿지 못하는 것
에 진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언제든 틀릴
수 있고, 잘못 볼 수 있으며, 잘못 생각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여
야 한다.**
[사람을 얻는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