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최강록)

캥거루와 새끼

혜월(慧月) 2024. 6. 15. 10:37

 

#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 행동할 수 있게 #

아빠 캥거루가 먹이를 구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자

엄마 캥거루가 홀로 아이들을 애지중지 키운다는 이야기

 

* 캥거루와 새끼 *

어느 초원에 캥거루 가족이 살았습니다 하루는 아빠 캥거루가

가족을 위해 먹이를 구하러 나갔다가 그만 사냥꾼들에게 

붙잡혀갔습니다. 아빠 캥거루가 돌아오지 않자 엄마 캥거루는

초조해졌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아빠 캥거루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난 줄 알고 걱정하던 엄마 캥거루는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남편이 떠난 거라고 여긴 것이죠.

   '젊고 예쁜 캥거루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 거야. 이렇게

배신을 당할 줄이야....'

   남편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엄마 캥거루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네 아빠는 우리를 버리고 떠났다. 하지난 내가

아빠 몫까지 다해줄 테니 염려 마라."

   이후 엄마 캥거루는 아들을 보살피는 데 모든 힘을 쏟았습니다.

아빠 없이 자라는 버릇없는 캥거루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챙겼습니다.

   조금만 걱정스러운 일이 생기면 달려가 아들을 대신해 나서서

해결했습니다. 친구들과 다툼이 생겼을 때도 어김없이 나타나

아들을 보호하면서 방패막이가 되어줬죠.

   그렇지만 아무리 전사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아들을

돌봐도 아들의 모든 걸 대신해줄 순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아예 아들을 내 아랫배에 있는 주머니에

넣어서 키우는 게 좋겠어.'

   엄마 캥거루는 아들을 위하는 마음에 독립을 준비해야 할

아들을 자신의 아랫배 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아들 캥거루는 엄마 뱃속 주머니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장성해 어른 캥거루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머니 

안에서 나올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죠.

  엄마 캥거루는 다 큰 아들을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먹이고

입히는 게 여간 힘들고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아빠 캥거루 몫

까지 두 배 이상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에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들 캥거루는 친구들이 장가가고 시집가고 

살림을 차려 새끼 낳는 걸 보면서도 스스로 먹이 하나 구해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 캥거루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되니 애써 뭔가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엄마 캥거루는 장성한 아들을 뱃속에 싣고 매일 싱싱한 풀과

시원한 물을 찾아다니느라 점점 지쳐갔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엄마 아랫배 주머니 속에 앉아 나보다 더 팔자 좋은 아들이

있을가 생각하며 만족스러워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엄마 캥거루가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창자가 빠지는 무서운 병에 걸린 것입니다. 엄마 캥거루는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엄마 캥거루가 죽어가는 동안에도

아들은 엄마 뱃속 주머니에서 나올 줄을 몰랐습니다.

   엄마 캥거루는 안타까운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 캥거루는 슬피 울었습니다.

   그런데도 죽은 엄마 뱃속 주머니에서 나오지 않았죠. 엄마

뱃속 밖의 세상을 알지 못했으니까요.

  며칠 뒤 아들 캥거루 역시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죽은 엄마

캥거루 아랫배 주머니 속에 웅크린 채 말입니다.

 

# 평생 부모에게 기생해 살아가는 사람들 #

캥거루족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성인이 되어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부모에게 기

대 사는 젊은이를 '캥거루족'이라고 합니다.

   자의식이 부족해 자립할 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주로 경

제적인 측면에서 취직하거나 창업해 힘들게 돈을 벌며 사는 것보

다 부모한테 의존해 손쉽게 살아가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겁니다.

   물론 학교를 졸업해도 취업이 힘들고 경제가 좋지 않아 마땅히

일할 곳을 찾기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이 모든 역경을 헤쳐나가면

서 독립적으로 삶을 개척하려는 정신과 의지가 약한 탓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은 이미 어른이고 공부도 할 만큼 했음에도 여전히 캥거루처

럼 엄마 뱃속 주머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죠.

   캥거루는 태반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갓 낳은 새끼가 1~2cm 크

기에 불과할 정도로 미성숙한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그래서 새끼

는 출생 직후 어미 배에 있는 육아낭으로 들어가 꽤 오랫동안 생

활해야 합니다. 육아낭 속에 있는 젖꼭지에 달라붙어 6개월 내지

1년 동안 성장한 뒤에야 비로소 독립할 수 있죠.

   이처럼 캥거루의 가장 큰 특징은 어미 아랫배 앞에 있는 육아낭

입니다. 종족 보존을 위해 마련된 생명 유지 장치죠. 다 자란 캥러

루가 나가기 싫다고 해서 마냥 머물러도 되는 장소가 결코 아니라

는 겁니다.

   성장한 캥거루는 반드시 육아낭에서 나와야 합니다. 자연의 법

칙이고 생명 유지 장치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육아낭도 없는 인간

사회에서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난 MZ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더 독립적이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선호합니다. 그런데도

이들 중 상당수가 캥거루족입니다.

   2022년 봄 통계개발원에서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MZ세대

인구는 1,629만여 명으로 총인구의 32.5%를 차지했는데 이중 부

모와 함께 사는 이른바 캥거루족의 비율은 42.5%로 나타났습니다.

열 명 가운데 네 명이 캥거루족인 셈이죠.

   20~30세대인 MZ세대에만 캥거루족이 있는 게 아닙니다. 40~50

대 캥거루족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심지어 60대 이상의 캥거루족

도 있습니다.

   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평생 부모에게 기생해 살아가는 사

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닌가 봅니다. 일본, 미

국, 유럽 등 세계 각국 사정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은퇴한 노부모의 연금을 빨아먹고 산다고 해서 캥거루

족을 '빨대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캥거루족 혹은 빨대족의 증가는 가계로 봐선 부모 세대의 부담

으로 이어지며, 사회로 봐선 생산성이 저하되고 사회적 비용이 증

가하면서 역동성이 떨어집니다.

   자녀 양육과 교육 등으로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베이비

붐 세대 부모들이 다 큰 자녀들의 생활비까지 부담하느라 빈곤층

으로 내몰릴 수도 있습니다. 노년층의 빈곤율이 무려 45%에 이르

는 현실은 이 상황이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출산율 저하로 인구는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 의학의 발달로 평

균 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이때, 나이 든 부모가 젊은 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건 재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 피터 팬 증후군의 방어기제들 #

캥거루족처럼 어른으로서 마땅히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심리를 심리학자들은 '피터 팬 증후군(Peter pan syndrome)'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육체적으로는 이미 성숙한 지 오래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신 상태, 즉 뭔가를 책임지는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여전히 어린아이의 정신 상태에 머물러 있는 걸 가리킵니다.

  1983년 미국의 임상 심리학자 댄 카일리 박사가 처음 사용한 후

널리 퍼졌습니다. 

   피터 팬은 영국 작가 제임스 매슈 배리 경이 쓴 동화 속 인물입

니다. 몸은 다 컸지만 마음은 성숙하지 않아, 순진하고 현실 도피 

적인 캐릭터죠.

   책임감이 없고 타인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의 무게를 견디지 못

합니다.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생각 따

위는 아예 하지 않습니다. 피터 팬 증후군의 대표적인 방어기제는

부정, 퇴행, 합리화 등입니다.

  '부정(Denial)' 은 유쾌하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은 현실을 거

부하거나 무시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공무원 시험이나 자격증 시험 준지를 한다고 학원에

들락거리지만 친구들과 놀기 바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퇴행(Regression)'은 스트레스나 불안을 느끼면 어린아이가 되

어버리는 겁니다.

   예를 들면, 뭘 해도 되는 일이 없을 때 아무 대책 없이 손을 놔버

린다든가 방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다든가 엎드려 울기만 한다든가

하는 것이죠.

   '합리화(Rationalization)'는 힘든 일이 생기면 자기만의 논리로

정당화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빈둥거린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놓곤 곧 취직이 될 거니까 하찮은 시간제 아르바이트는 할 필요

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속으론 합격하리라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말입니다.

 

#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 행동할 수 있게 #

우화 속으로 다시 들어가보겠습닏다. 엄마 캥거루의 심정이 이해

는 됩니다. 믿었던 남편에게 배신당했다고 느꼈으니 자식밖에 없

다고 생각했겠죠. 그래서 새끼 캥거루에게 깊은 애착을 갖고 온 정

성을 다해 키웁니다.

   시간이 되면 독립해서 따로 살아가도록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다 자란 아들을 육아낭 속에 넣어 애지중지 돌봅

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엄마 캥거루는 육아낭 속에 든 어른(이 된

새끼) 캥거루를 돌보는 일이 버거워 병이 나서 죽고 말았습니다.

제힘으로 살아갈 능력을 잃어버린 피터 팬 같은 아들 캥거루 역시

어울리지도 않은 육아낭 속에서 슬피 울다 굶어 죽었습니다.

   이 모자의 비극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요?  독립심 없는 아들도

문제지만, 아들을 그렇게 키운 엄마 잘못이 절대적입니다. 제 자식

이 애틋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을깡요?

   그럴수록 아이를 자립할 수 있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아이에

게 독립심을 길러줘야 합니다. 고기를 잡아다 먹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합니다.

   어린 자녀를 자동차로 매일 등하교시켜주고 숙제를 대신해주며

어떤 친구를 사귈지까지 결정해주는 부모가 있습니다. 대학생이

된 자녀의 수강 신청과 군대 간 아들의 병영생활까지 관여하는 부

모도 있다고 합니다.

   나중에 자녀가 대학 졸업 후 어느 회사에 취업할지, 결혼 상대자

는 어떻게 정해햐 하는지 간섭하고 결혼한 자녀의 사생활에도 적

극적으로 개입할 것입니다.

   '과잉보호(Overprotection)'는 결코 자녀를 잘되게 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과잉보호는 건강한 사랑이 아닙니다. 자식을 정말 사랑

한다면 안전한 둥지를 떠나 자기만의 세계를 향해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도록 둥지 밖으로 밀어내야 합니다.

   아이가 떼를 쓰더라도 시기가 되면 육아낭 밖으로 나오도록 해

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밖에 모르는 의존적인 사람으로 자

랍니다.

   의존증이 심할 경우, 보호받고자 하는 욕구가 지나쳐 자신의 의

존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매달리며 타인

의 무리한 요구에도 순종적으로 응하는 인격장애인 '의존성 성격

장애(Dependent Personality Disorder)'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자식을 잘 키우는 부모가 되고 싶다면 캥거루 엄마와는 다르게

아이들을 키워야 합니다. 어렸을 땐 물론 세심하게 잘 보살펴야겠

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면 육아낭에서 나와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죠.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행동하고 자신의 결정에 책임

질 수 있게 키워야 합니다. 넘어지면 바로 달려가 일으켜 세워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털고 일어나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 참고 기다려

줘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는 끝까지 나를 믿고 지켜봐주며 격려하고

후원해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이가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 좋은

부모 역할은 이것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

아이를 자립할 수 있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아이에게 독립심을 길러줘야 한다.

고기를 잡아다 먹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