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최강록)

늑대와 당나귀

혜월(慧月) 2024. 6. 22. 10:37

 

# 자신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겐 관대해야 하는 이유 #

우두머리가 된 늑대가 공정하게 다스리겠다고 법을 

선포하고 뒤로는 먹잇감을 숨겨놨다는 이야기

 

* 늑대와 당나귀 *

사납고 욕심 많은 늑대가 있었습니다. 성질이 고약했지만 

워낙 용맹했기에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전의

우두머리들과는 좀 다른 특색 있고 멋진 우두머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법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기분대로가 아닌 법대로

통치하는 민주적이고 세련된 우두머리로 보이고 싶었던

겁니다. 그는 늑대들을 한데 모아 법을 선포했습니다.

   "법을 선포하겠다. 나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법대로 

공정하게 다스리겠다. 각자 열심히 사냥해 잡아 온 먹이를

자기만 먹지 않고 다 같이 모아 공평하게 나눠 먹는 것이다.

누구는 기력이 왕성하고 운이 좋아 사냥을 많이 하고,

누구는 건강이 좋지 않고 운도 나빠 사냥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모두 한 공동체니까 많이 잡은 늑대가 

조금 양보하고 적게 잡은 늑대가 혜택을 봐서 골고루 나눠

먹는다면 차등 없는 평화로운 늑대 왕국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듣고 보니 정말 그럴싸했습니다. 늑대들이 손뼉을 치며 

찬성했습니다. 드디어 제대로 된 훌륭한 우두머리가 등장

했다고 좋아했습니다. 우두머리 늑대 역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곳을 지나던 당나귀 한 마리가 늑대 

무리를 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저 포악한 늑대 머리에서 이토록 선하고 합리적인 생각이

나오다니 정말 신기하군.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런데 

우두머리 늑대가 어제 사냥해서 굴에 몰래 숨겨둔 맛있는

먹잇감들은 어쩔 텐가? 법대로라면 그것들도 여기로 가지고

와서 공평하게 나눠야 하지 않겠냐?"

   소리가 커서 늑대들이 당나귀 말을 들었습니다. 순간 무리가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우리 보고 잡아 온 먹이를 공평하게 나누자더니 자기는

혼자 먹으려 했던 거야?":

   "우리가 잡은 먹이는 같이 나눠 먹고, 자기가 잡은 먹이는 

혼자만 먹겠다는 거잖아?"

   우두머리 늑대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세련되고 민주적인

우두머리로 보이면서 실속을 챙기려던 계획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리를 향해 소리 질렀습니다.

   "저런 천하의 못된 당나귀 같으니라고... 아, 그래 너희들이

그렇게 싫다면 할 수 없지. 새로 선포한 법은 없던 걸로 해. 

예전처럼 자기가 잡은 건 자기가 다 먹는 거야."

   무안해진 우두머리 늑대는 법을 선포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법을 폐지해버렸습니다.

 

# 내 것은 당연히 내 것, 네 것도 어쩌면 내 것 #

식당에 가서 여럿이 밥을 먹거나 잔칫집에 가서 단체로 식사할 때

어떤 순서로 음식을 드시나요? 내 앞에 있는 밥과 국 혹은 요리를

먼저 드시나요? 공용으로 제공된 반찬이나 음식을 먼저 드시나요?

   아마 대부분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공통의 음식을 먼저 먹은 후에

주어진 밥과 국 혹은 요리 같은 개인용 음식을 먹을 겁니다. 내 것

은 언제든 먹을 수 있지만, 공통의 음식은 빨리 먹지 않으면 남이

다 먹어 남아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게 주어진 음식을 먼저 먹느라 공용으로 제공된 음식은 거들

떠보지 않거나 먹을 기회를 놓치는 사람은 아둔하거나 미련스럽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식탁 위의 이런 행동 정도야 애교라고 할 수 

있죠.

   범위를 넓혀 사업이나 재산 이야기를 하면 꽤 심각해집니다. 장

사나 사업에도 상도의 라는 게 있습니다. 돈을 버는 치열한 상업 활

동이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비슷한 가게가 있는 곳에 유사 업종의 점포를 개업하

지 않는다든지, 다른 회사가 먼저 개발한 똑같은 제품을 동시에 출

시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내 것만 키우려고 상도덕을 무너뜨리

면 상업 활동은 무법천지의 정글이 되고 말 것입니다. 부모의 재산

을 상속받을 때도 자식들이 서로 더 많이 갖겠다고 싸우면 부모 자

식 사이가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내 것은 당연히 내 것이기에 꽉 움켜쥐고, 타인의 것도 내 것으

로 만들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다가 기회만 되면 빼내 오려고 혈안

이 되어 있는 사람은 과도한 탐욕주의자임이 분명합니다.

   '탐욕(Avarice)'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많은 걸 소유하려

는 욕망입니다. 탐욕주의자는 탐욕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죠.자

기 자신밖에 생각하지 않는 극도의 이기주의자이기도 합니다.

   노골적으로 탐욕을 드러내는 사람은 알아보기 쉽습니다. 대놓고

욕심을 부리니까요. 잘만 확인하면 피할 수 있습니다. 위험한 건

안 그런 척하면서 은근히 욕심을 부리는 사람입니다. 어지간해서

탐욕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속으론 자신의 이익을 채우고자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도 겉으론

모두를 위하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이타적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위선자라고 부릅니다.

   '위선(僞善,Hypocrisy)'이란 거짓으로 선한 척, 정의로운 척하는

겁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타인 앞에선 선한 말과 행동을 

하지만 마음속엔 탐욕을 채우려는 이기적인 욕망뿐입니다.

   소위 사회 지도층이나 정치인 또는 막강한 힘을 가진 자리에 있

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면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사는 것 같아도 잇속만 챙기는 사람은 [이솝

우화] 속 우두머리 늑대와 같습니다.

 

# 내로남불의 심리학 #

성숙한 사람이라면 더구나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본이 되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들에겐 관대해

야 합니다. 그래야 법과 질서가 제대로 서고 말과 행동에 무게가

실립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하면서 남들에겐 지나치

게 엄격한 사람이 많습니다. 요즘은 아예 사자성어처럼 쓰이고 있

는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는 이런 세태를 잘 표현해주는 말입니다.

   학생이나 젊은이, 직장인이나 주부 등 힘없는 보통 사람들이 가

장 실망하는 건 모범을 보여야 할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

이 일치하지 않을 때입니다.

   입으론 교양과 상식, 윤리와 도덕에 맞는 온갖 좋은 말을 하면서

도 실제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 실망감과 괴리감을 넘어

배신감까지 느낍니다.

   "내가 야근할 때 자기 혼자 일찍 퇴근하는 거 보고 알아봤지. 사

고 칠 줄 알았다니까?"

   직장 동료가 중요한 일을 하다가 실수했을 때 손가락질하는 사

람이 있습니다.

   "그날 군에서 휴가 나온 친구랑 술만 마시지 않았어도 시험을 망

치지 않았을 텐데..."

   공부를 게을리해서 시험을 잘못 치른 대학생이 친구에게 윈인을

돌리기도 합니다.

   어떤 행동이든 수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쉽

게 원인을 찾으려 합니다.

   타인이 뭔가 잘못했거나 실수했을 땐 원인을 전부 그에게 돌리

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잘못했거나 실수했을 땐 원

인을 타인이나 세상 탓으로 돌립니다.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은 과소평가하면서 그 상황에서 나타나는

성향은 과대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행동엔 다양한 원인이 있음에도 원인을 무시하고 행위자

의 내적 특성 탓으로만 돌리는 오류를 심리학에선 '기본적 귀인 오

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합니다.

   '귀인(歸因)'은 특정한 행동이 발생한 원인을 추론하는 걸 뜻하

는데, 귀인 오류 가운데 흔하게 관찰할 수 있는 편향이기 때문에

'기본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입니다. '내로남불'을 심리학적으

로 풀어낸 것이죠.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기던 친구가 어느 날 로또에 당첨되어 거

액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거야말로 일확천금이지. 전형적인 불로소득이라고 세금을 

왕창 때려야 해."

   이렇게 말한 친구가 자기도 로또에 당첨되었습니다. 친구보다

더 많은 돈을 거머쥐었죠.

   "이건 노력의 대가야. 내가 꾸준히 로또를 사면서 기도를 엄청나

게 많이 했다니까."

   같은 결과를 놓고도 해석이 극과 극입니다. 차이는 내 일인가 남

의 일인가, 내 이득인가 남의 이득인가, 내 소유인가 남의 소유인

가 일뿐입니다. 전형적인 기본적 귀인 오류입니다.

   귀인에는 '상황적 귀인(Situational Attribution)' 과 '기질적 귀인

(Dispositional Attribution)' 이 있습니다.

   잘못이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원인이 불우한 가정환경,

지독한 가난, 잘못된 교우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상황적 귀

인입니다.

   반면 흉악한 성격, 반항적 기질, 인격적 미성숙으로 원인을 돌리

는 건 기질적 귀인입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선 상황적 귀인을 하려 하고, 타인의 문제에

대해선 기질적 귀인을 하려 합니다. 내가 실수한 건 사회나 구조

탓이지만, 그가 잘못한 건 그 자신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겁

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나는 늘 이해의 대상이고 타인은 비난의

대상입니다.

   내 것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세게 움켜쥐고, 이웃과 사회를 위해

베푸는 일에는 한없이 인색한 사람은 탐욕스러운 사람입니다.내

것은 당연히 내 것이고, 타인의 것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열을

올리는 사람은 탐욕주의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겉으론 안 그런 척하면서 좋은 말을 하고 정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는 건 위선입니다. 위선자는 오직 자기 자신

만 알기 때문에 이기주의자입니다.

   이런 사람의 말과 행동은 내로남불, 즉 기본적 귀인 오류에 빠져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탐욕으로 인한 두 얼굴입니다.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겐 잔인할 정도로 가혹한 이런

사람의 삶이 과연 행복할까요? 자신이 바라던 소유로 즐거울까요?

결과적으로 우두머리 늑대처럼 될 공산이 큽니다.

 

# 탐욕의 끝은 씁쓸하다 #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

한가>라는 단편소설을 썼습니다. 평범한 농부 바흠은 농사지을 땅

을 원했지만, 가난해서 땅을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지방의 땅 주인이 땅을 헐값에 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땅 주인의 매매 방식이 특이했습니다. 아침에

출발점을 떠나 하루 동안 자기 발로 밟고 돌아온 땅이 전부 자신의

땅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무효라는 조건이

달려 있었지만, 빨리 걷기만 하면 많은 땅을 소유할 수 있었죠.

   바흠은 계약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찍 광활한 땅 위

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땅을 가지려는 욕심에 정신없이 걸었

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더 욕심이 생격

멀리멀리 갔습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합니다. 생각보다 멀리 온 바흠은 돌아가고

자 출발점을 향해 전력으로 내달렸습니다. 땀이 비오듯 했으나 땅

을 얻고자 사력을 다해 뛰었습니다.

   젖 먹던 힘까지 쏟은 그는 마침내 출발점에 도착했지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땅 주인은 그를 묻어줬

습니다. 그가 묻힌 땅은 그의 키인 183cm에 불과했습니다.

   땅 주인은 말했습니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탐욕의 끝은 씁쓸합니다. 우두머리 늑대가 욕심을 버리고 사냥

해온 먹잇감을 먼저 내놓은 뒤 사심 없이 정의로운 법을 선포했더

라면 늑대 마을은 평화로운 공동체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내 것

을 먼저 내놓는다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

내 건 빼앗기지 않으려고 세게 움켜쥐고,

이웃과 사회를 위해 베푸는 일엔 한없이 인색한 사람은

탐욕스러운 사람이다. 

내 건 당연히 내 것이고,

타인의 것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열을 올리는 사람은

탐욕주의자다. 

그런 사람이 겉으론 안 그런 척하면서 좋은 말을 하고

정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는 건 위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