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 老子 도덕경 제1장 -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불변의 도가 아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라 말할 수 있는 도는 불변의 도가 아니고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불변의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은 천지의 처음이고 이름이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욕심이 없는 것으로 미묘한 본체를 살피고 항상 욕심이 있는 것으로 그 순환하는 현상을 살핀다. 이 둘은 같이 나와 이름을 달리하며 둘다 현묘한 것이라고 한다. 현묘하고 또 현묘하여 모든 미묘한 것이 나오는 문이다. 도를 도라고 말하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즉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닌 것이다. 여기서의 常은 영원불변이 아닌 영원 즉 변화의 지속일 뿐 영원불변은 인간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노자의 도는 천도의 근원으로서 천지의 운행을 있게 하는 본질을 가리킨다. 그래서 도는 천지보다도 먼저 있는 것이다.
▶ 老子 도덕경 제2장 - 스스로 공을 자처하지 않는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사람들이 아름답다 하니 아름다운 줄 알지만 이는 추악한 것이 있기 때문일 뿐이고, 선하다고 하니 선한 줄 알지만 이는 선하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므로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가 낳는 것이고, 어렵고 쉬운 것이 서로가 이루고, 길고 짧은 것은 형태를 드러내어 서로 비교되기 때문이며, 높고 낮은 것이 서로 기울어지고, 음과 성은 서로가 있어야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앞이 있어야 뒤가 따르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작위함이 없이 일을 처리하고, 말하지 않고 가르침을 행한다. 천지 자연은 만물을 활동하게 하고도 노고를 사양하지 아니하며, 만물을 생육하게 하고도 소유하지 않는다. 행하고도 자랑하지 않고, 공을 이루어도 자기의 공로를 자처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공은 그에게서 떠나가지 않는다.
▶ 老子 도덕경 제3장 - 현능함을 높이지 않으면 다툼이 없다
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현능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투고 경쟁하는 일이 없게 되고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둑질하는 일이 없게 되고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야욕을 보여 주지 않으면 백성의 마음은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백성의 마음에 아무런 욕심이 없게 하고 배를 든든하게 채워 주며 밖으로 향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약하게 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골격을 튼튼하게 한다. 항상 백성으로 하여금 앎도 없고 욕심도 없게 하며 아는 자로 하여금 감히 작위하지 못하게 한다. 무위의 다스림으로 다스려지지 않는 일이 없다.
▶ 老子 도덕경 제4장 - 도는 우주보다 먼저 존재했다
道, 沖而用之, 或不盈. 淵兮 似萬物之宗.
도는 비어 있으나 아무리 사용해도 늘 가득 차 있고 넘치지 않는다. 깊고 넓어서 만물의 근본인 것 같다.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복잡한 것을 풀며 빛을 부드럽게 하여 티끌에도 뒤섞이건만 맑고 고요함이 늘 그대로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도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수 없으나 아마 우주를 주재하는 상제보다도 먼저 있었던 것 같다.
▶ 老子 도덕경 제5장 - 말이 많으면 막히게 된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천지가 어질지 않아서 만물을 추구로 여긴다. 성인도 어질지 않아서 백성들을 짚으로 만든 강아지와 같이 여긴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 같아서 비어 있으나 힘이 끝이 없고 움직일 수록 힘이 더욱 커진다. 말이 많으면 이치에 곤궁하게 되니 가만히 있는 것만 못하다.
▶ 老子 도덕경 제6장 - 도는 만물의 어머니이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도는 텅 빈 산골짜기의 신과 같고 그 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 이를 일러 현빈이라 한다. 현빈의 문은 천지의 근본이라 한다. 그 뿌리는 끊임없이 존재하는 것 같고 천지만물이 아무리 써도 지쳐 없어지지 않는다.
▶ 老子 도덕경 제7장 - 사심을 버림으로 존재하게 된다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하늘은 영원하고 땅은 오래다. 천지가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자신이 살려고 애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능히 영원히 살 수 있다. 성인은 자신을 뒤에 머물게 함으로 앞서고 자신의 이익을 떠나 잊으므로 실은 자신이 거기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사로운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심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 老子 도덕경 제8장 -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최상의 선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다투는 일이 없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물은 도에 거의 가까운 것이다. 사는 곳으로는 땅 위가 좋고, 마음은 못처럼 깊은 것이 좋고, 벗은 어진 사람이 좋고, 말은 믿음이 있어야 좋고, 정치나 법률은 세상이 잘 다스려지는 것이 좋고, 일을 처리하는 데에는 능숙한 것이 좋고, 행동은 적당한 시기를 아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다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못됨이 없는 것이다. 물은 이에 제일 가깝다.
▶ 老子 도덕경 제9장 - 공을 이루었으면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持而盈之, 不如其已. 취而銳之, 不可長保.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무리해서 계속 유지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두들겨 날카롭게 만든 칼은 오래가지 못하고 금은 보화를 집안에 가득 쌓아둔다고 해서 그것을 유지해 나갈 수는 없다. 부귀하여 교만하게 되면 스스로 화를 부르게 될 것이다. 일을 이루었으면 물러나는 것이 천도의 이치이다.
▶ 老子 도덕경 제10장 - 낳고 기르되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孀兒乎.
능히 분리됨이 없을 수 있겠는가? 기를 오로지하고 부드럼움의 이루어능히 갓난 아기처럼 될 수 있겠는가? 가믈한 거울을 깨끗이 씻어 능히 흠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백성을 아끼고 나라를 다스림에 능히 지혜롭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하늘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데 능히 암컷으로 머물 수 있겠는가? 밝고 또 밝아 사방을 비추면서 능히 함이 없을 수 있겠는가? 길은 생겨나고 덕은 쌓아가니. 낳으면서도 낳은 것을 가지지 않고, 지으면서도 지은 것에 기대지 않고, 자라게 하면서도 자란 것을 지배치 않는다. 이것을 일컬어 불가사의한 은덕이라 한다.
▶ 老子 도뎍경 제11장 - 비어 있음으로 쓰임이 있다.
十輻共一곡. 當其無, 有車之用.
서른개의 바큇살이 바퀴통에 모여 있으나, 바퀴통 복판이 비어 있음으로 쓸모가 있고, 찰흙을 이겨 옹기그릇을 만드나, 그 한가운데가 비어 있어 쓸모가 있다. 문과 창을 만들어 방을 만드나, 안이 비어 있기 때문에 방으로 쓸모가 있다. 그러므로 모양이 있는 것이 쓸모가 있는 것은 모양이 없는 것이 그 뒷받침을 하기 때문이다.
▶ 老子 도덕경 제12장 - 배를 채울 뿐 겉치레는 하지 않는다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오색의 찬란한 빛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의 아름다운 소리는 사람의 귀를 먹게 하고, 오미의 좋은 맛은 사람의 입을 버려 놓는다. 말을 타고 짐승을 사냥하게 되면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만들고, 얻기 어려운 재물은 사람의 행실을 나쁘게 만든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배를 채울 뿐 겉치레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고 한다.
▶ 老子 도덕경 제13장 - 괴로움이 다 하면 즐거움이 온다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何謂寵辱若驚.
은총도 굴욕도 깜짝 놀랄 일을 당하는 것과 같이하고 큰 근심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제 몸을 귀하게 여기는 것과 같이 하라. 은총도 굴욕도 깜짝 놀랠 일을 당하는 것과 같이 하라 하는 것은 사랑 받는 것은 위에서 아래로 행하여지므로 얻어도 잃어도 조심하며 놀랍게 여기라는 것이니 이래서 은총과 굴욕은 깜짝 놀랄 일을 당하는 것과 같다 하는 것이다. 큰 근심을 피하려 하지 말고 몸을 귀하게 여기는 것과 같이하라 하는 것은 나에게 큰 근심이 있음은 나의 몸이 있기 때문이니 내 몸이 없으면 내게 어찌 근심이 있겠는가? 내 몸을 소중히 여기듯이 천하를 소중히 여긴다면 천하를 맡길 수 있고 내 몸을 사랑하듯이 천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부탁할 수 있다.
▶ 老子 도덕경 제14장 - 도는 보고 듣고 만질 수 없는 것이다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눈을 크게 뜨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빛이 없다고 한다. 귀를 기울이고 들으려 해도 아무 것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소리가 없다고 한다. 손으로 쳐보고 만져보아도 아무 것도 잡히지 않기 때문에 형체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말로는 도의 정체를 제대로 규정할 수 없다. 이 세 가지 말을 섞어 하나로 한 존재인 것이다. 그 위 부분은 분명하지가 못하고 그 아랫 부분은 어둡지가 않다. 휑하여 이름 붙일 수가 없고 물질 세계를 초월한 곳으로 되돌아가 있다. 이 것을 모양 없는 모양, 물질의 차원을 초월한 형상이라 한다. 어렴풋해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앞에서 본다고 그 머리가 보일 리 없고 뒤에서 본다고 그 꼬리가 보일 리 없다. 태고 때부터 진리를 꼭 잡고 삼라만상을 주재하고 있다. 역사와 시간의 첫 근원을 알 수 있는 것, 그 것을 도의 본질이라 한다.
▶ 老子 도덕경 제15장 - 참된 사람은 가득 채우려 하지 않는다
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예로부터 도를 닦은 훌륭한 선비는 미묘하고 심원하여 그 깊이를 헤아려 알 수가 없다. 깊이를 헤아려 알 수 없기에 모습을 억지로 묘사해 보면 그 신중한 모습은 추운 겨울에 찬 냇물을 건너가는 것과 같고 조심하는 모습은 주위를 둘러싼 적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엄숙해서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은 손님의 당당한 모습과 같고 부드럽게 막힘이 없는 것은 봄바람에 녹는 어름과 같다. 꾸밈이 없는 것은 마치 산에서 갓 베어낸 통나무와 같고 구애되지 않는 마음은, 텅 비어 있는 골짜기와 같으며 세상과 한데 섞여 있는 모습은, 마치 흐려진 물과도 같다. 흐린 물을 흐린 채 그대로 두어 서서히 가라앉아 맑아지게 하는 그런 무위의 일을 그 누가 하겠는가? 산골짜기처럼 조용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어 풀과 나무가 서서히 자라고 있듯이, 그런 무위의 것을 누가 하겠는가? 이 무위의 도를 몸에 품고 있는 사람은 보름달처럼 꽉 차 있는 것을 바라는 일이 없다. 그렇게 차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옷이 낡으면 새 것을 만들어 입듯이 변화 속에 다함이 없다.
▶ 老子 도덕경 제16장 - 자신 본래의 참모습으로 돌아가라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마음이 텅 빈 극치에 이르고 참답게 무위의 고요함을 지키게 되면 만상의 온갖 움직임이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만상이 갖가지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저마다 자신의 뿌리고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뿌리고 돌아가 있는 것을 고요, 무위의 고요함이라 말하고 고요한 것을 명, 각자 본래의 참 모습으로 돌아가 있다고 한다. 명에 돌아가 있는 것을 떳떳함, 영원불멸이라 말하며 떳떳함 본연의 모습에 눈뜨는 것을 밝음, 절대의 지혜라 한다. 떳떳한 모습을 깨닫지 못하면 경거망동해서 불길하다. 떳떳한 것을 깨달으면 누구에게 대해서나 너그럽게 되고 너그럽게 되면 공평무사하며, 왕자의 덕을 갖추게 되고 왕자의 덕을 갖추면 하늘과 같이 광대해지며 하늘처럼 넓고 커지면 무위의 도와 하나가 되고 무위의 도와 하나가 되면 영원불멸이 된다. 몸을 마칠 때까지 편안히 살게 되는 것이다.
▶ 老子 도덕경 제17장 - 최상의 다스림은 존재만을 알게 하는 것이다
太上下知有之, 其次親而譽之, 其次畏之, 其次侮之.
최상의 군주는 백성들이 다만 임금이 있다는 것을 알 뿐인 군주이다. 백성들이 다정함을 느끼고 칭송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지배자를 두려워하는 정치는 그 아래이며 백성들이 업신여기게끔 되면 가장 낮은 지배자다. 지배자에게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실함이 부족하면 백성들로부터 신용을 얻지 못한다. 최선의 군주는 무위의 정치를 하기 때문에 공을 이루어도 백성들에게 자랑하지 아니하고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 老子 도덕경 제18장 - 지혜가 있으므로 속임이 있게 되었다
大道廢, 有仁義, 智慧出, 有大僞,
큰 도가 행해지지 않게 되자 인이니 의니 하는 것이 강조되게 되었고, 지혜가 발달하니 거짓이 있게 되었다. 집안 사람끼리 불화가 생기게 되니 효니 자애니 논란이 생기게 되고, 나라의 질서가 문란해지면 충신이란 것이 만들어지게 된다.
▶ 老子 도덕경 제19장 - 순박한 마음으로 욕망을 버려라
絶聖棄智, 民利百倍, 絶仁棄義, 民復孝慈, 絶巧棄利, 盜賊無有.
정치하는 사람이 재주와 지혜를 버리면 백성의 행복과 이익은 백 배가 되고 정치하는 사람이 인과 의를 버리면 백성은 본래의 사랑과 효도로 돌아가게 된다. 정치하는 사람이 제도와 도구를 버리면 세상에 도둑과 범죄는 생기는 일이 없다. 위의 세 얘기로도 무위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다음의 말을 덧붙인다. 본 바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켜 사사로운 정을 억누르고 나를 위한 욕심을 적게 하라.
▶ 老子 도덕경 제20장 -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絶學無憂. 唯之與阿, 相去幾何.
학문을 그만두면 근심이 없다. '네'나 '응'이나 대답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좋으니 나쁘니 하는 것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에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은 막막해서 끝이 없다. 사람은 그저 마음이 들떠서 잘 차린 상을 받은 손님 같고, 봄날 높은 대에 오른 구경꾼 같다. 그러나 나만은 조용히 마음이 움직이는 기색마저 없고, 아직 웃을 줄 모르는 갓난아이와 같다. 초라하니 풀이 죽은 주인 없는 나그네 같다. 사람들은 모두 여유가 있는데 나만은 늘 가난하다. 내 마음은 바보의 마음, 그저 멍청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모두 똑똑하고 활발한데, 나만은 흐리멍덩하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상세하고 분명한데, 나만은 우물쭈물 결단을 못 내린다. 바다처럼 흔들리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정처 없다. 사람들은 다 유능한데, 나만은 우둔하고 촌스럽다. 나만이 남다른 사람이라 먹이고 길러준 어머니의 도를 소중히 하고 있다.
▶ 老子 도덕경 제21장 - 도는 심오하고 그윽하다
孔德之容, 惟道是從. 道之爲物, 惟恍惟惚.
큰 덕을 지닌 사람의 모습은 오로지 도만을 따르고 있다. 도라는 것은 그저 어두워 잘 분간할 수 없고 분간할 수 없는 어두움 속에도 무엇인가 모양이 있으며 어두워 분간할 수 없는 속에도 무엇인가가 실재하고 있다. 심오하고 그윽한 속에 영묘한 정기가 들어 있고 그 정기는 다시없이 참된 것으로 그 속에 창조자로서의 뚜렷한 증거가 있다. 그 것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이 도라 불리고 있어 수많은 족장들을 거느리는 총령과 같다. 족장들의 실상을 내가 아는 것은 총령의 도에 의해서이다.
▶ 老子 도덕경 제22장 - 굽은 나무는 베어지지 않는다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폐則新, 少則得,
굽은 나무는 수명을 온전히 마치게 되고, 자벌레는 몸을 굽힘으로써 뻗을 수도 있게 된다. 물은 우묵한 웅덩이로 흘러 모이게 되고, 옷은 낡아 해어져야만 다시 새 것을 입게 된다. 욕심이 적으면 마음의 만족을 얻을 수 있고, 지식이 많으면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무위 자연의 성인은 하나인 도를 지켜 천하의 법이 되는 것이다. 무위 자연의 성인은 자기를 내세우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의 존재가 뚜렷해지고, 자신을 옳다 하지 않기에 그 좋은 것이 세상에 나타난다. 자기의 공을 자랑하지 않기에 그 공이 자기의 것이 되고, 자신의 우쭐댐을 버리기에 언제까지고 존경을 받게 된다. 성인은 절대로 남과 다투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세상에 그를 적으로 대하는 사람이 없다. 옛 사람이 말하거늘 굽은 나무는 제 수명을 다한다고 했는데, 참으로 인생의 진리를 제대로 말한 것이다. 참으로 굽은 나무가 되어 내 몸을 온전히 하고, 온전한 몸을 대자연에 되돌려 주는 것이다.
▶ 老子 도덕경 제23장 - 퍼붓는 소나기로는 하루종일 내릴 수 없다
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들어도 들리지 않는 말은 유구한 무위의 자연이다. 시끄러운 회오리바람으로는 아침 내내 계속 불지 못하고 퍼붓는 소나기로는 온종일 내리지는 못한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천지가 하는 일이다. 천지가 비바람을 계속되게 하지 못한다면 사람으로야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무위자연 그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도일 경우에는 그 도와 하나가 되고 덕일 경우에는 그 덕과 하나가 되며 실덕일 경우는 그 실덕과 하나가 된다. 도와 하나 되면, 도 또한 그를 얻어 기뻐하고 덕과 하나 되면, 덕 또한 그를 얻어 기뻐하며 실덕과 하나 되면, 실덕도 그를 얻어 기뻐한다. 무위자연의 명백한 증명이 결여된 말은 누구로부터도 신용을 얻지 못한다.
▶ 老子 도덕경 제24장 - 발돋움으로는 오래 서 있을 수 없다
企者不立, 跨者不行. 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
발돋움하는 자는 오래 서 있지 못하고 큰 걸음으로 급히 걷는 사람은 멀리 걸어가지 못한다. 나를 내세워 자랑하면 뚜렷하게 나타내어지지 않고 나를 옳다고 하면 그 착한 것도 드러나지 않게 된다. 내 공을 자랑하면 그 공도 소용없게 되고 혼자 우쭐거리면 곧 그 앞이 막히게 된다. 이와 같은 부자연스러운 행위를 무위의 도에 있어서는 먹다 남은 밥, 소용없는 행동이라 부른다. 누구나 늘 싫어하며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에 도 있는 사람은 그 곳에 몸을 두지 않는다.
▶ 老子 도덕경 제25장 - 도의 본 모습은 자연이다
有物混成, 先天地生.
혼돈하여 하나가 된 그 무엇이 천지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해 있었다. 그 것은 고요하여 소리도 없고, 아득하여 모양도 없고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어느 것으로도 변하지 않으며 삼라만상에 두루 나타나 잠시도 쉬는 일이 없다. 그 것을 만물의 어머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실상 그 이름마저 알 수 없다. 임시로 이름 지어 도라 하고, 억지로 이름 붙여 크다 하자. 이 큰 것은 크기 때문에 흘러 움직이고 흘러 움직이면 끝이 안 보이는 넓이를 갖게 되고 멀고 먼 넓이를 가지면 또 본래의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이리하여 도는 큰 것이라 불리지만 큰 것으로는,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제왕도 또한 크다. 이 세상에는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제왕이 그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제왕은 인류의 지배자로서 땅의 참모습을 본받고 땅은 하늘의 참모습을 본받으며 하늘은 다시 도의 참모습을 본받는다. 그리고 도의 본 모습은 자연이기 때문에 도는 다만 자연을 본받아 자유자재 한다.
▶ 老子 도덕경 제26장 - 조급하면 지위를 잃게 된다
重爲輕根, 靜爲躁君.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근본이 되고 고요한 것은 시끄럽고 조급한 것의 주인이 된다. 그러므로 무위의 성인은 종일 길을 가도 짐을 몸에서 버리지 않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에도 초연하다. 어찌 제왕이 된 자가 세상에 대해 몸을 가볍게 움직이겠는가? 경솔하게 행동하면 자신의 근본을 잃게 되고 조급하면 지배자로서의 지위를 잃게 된다.
▶ 老子 도덕경 제27장 - 잘 가는 사람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善行, 無轍迹, 善言, 無瑕謫, 善數, 不用籌策.
잘 가는 사람은 지나간 흔적을 남기지 않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말에 흠이 없으며 계산을 잘하는 사람은 계산기 따위를 쓰지 않는다.
문을 잘 닫는 사람은 빗장을 걸지 않아도 열리지 않게 하고 잘 묶는 사람은 매듭을 짓지 않아도 풀어지지 않게 한다.
그러므로 무위의 성인은 사람을 구하여 잘 살려 나가며 어떤 사람도 버리는 일이 없고 항상 물건을 잘 다스려 쓰되 어떤 물건도 버리는 일이 없다. 이것을 밝은 지혜를 몸에 지니고 있다고 한다.
착한 사람은 착하지 않은 사람이 본받는 스승이 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은 착한 사람의 반성에 도움이 된다. 스승을 귀히 여기지 않고 내 몸을 귀히 여기지 않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알 바를 전혀 모르게 된다. 이 것을 신비한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 老子 도덕경 제28장 - 통나무가 쪼개지면 그릇이 될 뿐이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수컷의 성질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고 암컷의 유연함을 지키어 나가면 천하의 모든 것이 흘러드는 골짜기가 되고 천하가 모여드는 큰 골짜기가 되면 영원불변의 덕이 깃 들어 순수한 아이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밝고 명확함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고 어둡고 아득함을 지켜 나가면 온 천하가 본받는 사표가 되고 온 천하가 본받는 사표가 되면 영구불변의 덕에 어긋남이 없이 한없는 도의 세계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속세의 영화가 어떤 것인가를 알고 욕된 생활을 참고 견뎌 내면 온 세상이 돌아오는 큰 골짜기가 되고 온 천하가 돌아오는 큰 골짜기가 되면 영구불변의 무위의 덕으로 가득 차 있어 손대지 않은 통나무의 소박함으로 뒤돌아가게 된다. 통나무를 쪼개어 그릇을 만들 수 있듯이 소박함을 끊어 인재를 만들 수 있지만 성인이 그들을 쓸 때는 고작 한 분야의 우두머리로 쓸 뿐이다. 그러므로 크게 쓸 때에는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고 통나무의 소박함을 그대로 두는 것이다.
▶ 老子 도덕경 제29장 - 세상은 신비로운 그릇과 같다
將欲取天下而爲之, 吾見其不得已.
세상을 장악하여 다스려 보려 하여도 그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세상은 신비로운 것이어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잘 해보려고 해도 실패하게 되고 잡으려고 하면 놓치게 되고 스스로 앞서가는 것도 있고 다만 따라가는 것도 있다.
숨을 내쉬기도 하고 들이쉬기도 하며 강한 것도 있고 약한 것도 있으며 위에 얹히는 것도 있고 아래로 떨어지는 것도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지나친 것을 버리고 사치를 버리고 교만함과 태만함을 버린다.
▶ 老子 도덕경 제30장 - 전쟁은 전쟁을 불러온다
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天下. 其事好還.
무위자연의 도로 임금을 보좌하는 사람은 무력으로 나라를 강하게 만들려 하지 않는다. 무력은 무력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군대가 주둔한 곳에는 가시나무가 자라고 큰 전쟁이 있은 후에는 반드시 흉년이 들게 된다. 정치를 잘하는 사람은 이루어 놓은 결과 이상의 것을 취하려 하지 않고 자랑하는 태도를 갖지 않고, 공을 내세워 교만하지 않으며 어찌할 수 없는 필연의 도리에 따라가되 그 이상 강대해지려 하지 않는다. 만물은 장성하면 반드시 쇠퇴하기 마련이니 강성한 것에 집착하는 것은 도에 벗어나는 것이다. 도에 벗어나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 老子 도덕경 제31장 - 도를 아는 사람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夫佳兵者, 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무기는 모두 불길한 것으로 누구나 항상 싫어하는 것이니 도를 아는 사람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군자가 자연에 따라 일할 때는 왼쪽을 귀히 여기고, 어쩔 수 없이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할 때면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무기라는 것은 불길한 것이므로 군자가 사용하는 수단이 아니다. 군자가 어쩔 수 없이 무기를 사용함에 있어서는 욕심 없이 담담한 것을 제일로 삼고 승리를 거두어도 아름답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승리를 아름답게 여기는 자는 사람 죽이는 짓을 즐기는 자이다. 무릇 살인을 즐기는 자는 천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좋은 일에는 왼쪽을 귀하게 여기고 흉한 일에는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직접 병사를 지휘하는 장군은 왼쪽에 자리하고 전군을 통솔하는 장군은 오른쪽에 자리한다. 이는 장례의 예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되기 때문에 슬픈 마음으로 전쟁에 임하고 승리를 하였다 하여도 장례식과 같이 예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 老子 도덕경 제32장 - 도는 한결같고 이름을 초월한다
道常無名, 樸雖小, 天下莫能臣也,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
도는 한결 같고 이름이 없으며 이름을 초월한 것이다. 도는 손대지 않은 통나무처럼 그대로인 것이며 그것이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천하도 감히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군왕이 만일 이러한 도를 따라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장차 저절로 보배가 될 것이고 천지가 서로 화합하여 단비를 내리고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자연히 평등하게 다스려질 것이다.
통나무가 잘리고 쪼개져 많은 기구들이 생기듯 이것저것 분별하는 이름을 가진 제도가 생겨나면 이름을 가진 것의 한계를 알게 된다. 변하는 이름에 붙들려 있지 말고 변함없는 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위태로울 것이 없다. 도 있는 사람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산골짜기의 개울이 시내가 되어 자연히 강과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과 같다.
▶ 老子 도덕경 제33장 -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참으로 강한 사람이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다른 사람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스스로를 아는 사람은 밝은 사람이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 있는 사람이고 스스로를 이기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넉넉함을 아는 사람은 부유한 사람이고 힘써 행하는 사람은 뜻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의 분수를 아는 사람은 그 지위를 오래 지속하고 죽어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은 영원토록 사는 것이다.
▶ 老子 도덕경 제34장 - 스스로 크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크게 된다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큰 도는 넉넉하여 한 곳에 못 박혀 있지 않아 좌우로 없는 곳 없이 자유자재 한다. 만물은 도에 의해 생겨나지만 한 마디 자랑도 하지 않고 만물을 이루어 낸 공이 있지만 그 공을 내 것으로 하지 않으며 만물을 길러 내면서 그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항상 욕심이 없고 아무 것도 갖지 않으므로 작다고도 볼 수도 있으나 세상 만물이 그 품에 돌아와 안기어도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으므로 크다고도 말할 수 있다. 도는 자신을 스스로 크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기에 그 큰 것이 참으로 큰 것이 되는 것이다.
▶ 老子 도덕경 제35장 - 진리는 평범하다
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 安平太.
도를 지켜 살아가면 세상 어디를 가도 방해하는 것이 없어 항상 마음이 편안하고 화평하고 태평하다. 즐거운 음악과 좋은 음식이 있는 곳에서는 지나가던 나그네도 걸음을 멈추지만 무위의 진리는 그것을 입밖에 내더라도 담담하여 세속적인 맛이 없다. 눈 여겨 바라보아도 볼 수가 없고 귀 기울여 들어보아도 들을 수가 없고 그 것은 써도 끝이 없는 무한한 기능이 있다.
▶ 老子 도덕경 제36장 - 얻으려면 먼저 주어라
將欲흡之, 必固張之. 將欲弱之, 必固强之.
장차 움츠리게 하려면 잠시 펴지게 해준다. 장차 약하게 하려면 잠시 강하게 해준다. 장차 없애버릴 생각이면 잠시 흥하게 해준다. 이것을 미명이라 한다.
모든 유약한 것은 모든 강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 물고기가 연못 밖으로 나오면 살 수 없듯이 국가를 다스리는 이기는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 老子 도덕경 제37장 - 자연에 맡기면 저절로 바르게 된다
道常無爲而無不爲.
도는 항상 하는 것이 없지만 하지 않는 것도 없다. 만일 군주가 자연의 도를 따라 지켜 나가면, 만물은 저절로 생성하고 발전할 것이다. 저절로 생성하고 발전하게 만물에 맡기지 않고 인간들이 조작하려고 하면 나는 그러한 짓을 못하게 자연의 덕으로 진정시키리라. 자연의 덕은 욕심을 내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고요하고, 욕심이 없어 고요하면 천하는 저절로 바르게 된다.
▶ 老子 도덕경 제38장 - 도가 사라지니 인위적인 도덕이 나타난다
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최상의 덕은 덕을 의식하지 않으므로 덕이 있는 것이고 정도가 낮은 덕은 덕에 얽매이기 때문에 덕이 없다. 최상의 덕은 무위이며 자연스럽고 정도가 낮은 덕은 유위이며 부자연스럽다. 최상의 인은 유위이며 자연스럽고 최상의 의는 유위이며 부자연스럽다. 최상의 예는 유위이고 그 예에 반응이 없으면 팔을 걷어 붙이고라도 예로 이끈다. 무위자연의 도가 사라지면 무위자연의 덕이 나타나고 무위자연의 덕이 사라지면 인위적인 인의 도덕이 나타나게 되고 인위적인 인의 도덕이 사라지면 인위적인 의의 도덕이 나타나게 되고 인위적인 의의 도덕이 사라지면 인위적인 예의 도덕이 나타나게 된다.
예의 도덕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참다운 마음이 엷어진 것이며 세상이 어지럽게 되는 시초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일을 미리 내어보는 지식이란 것은 도의 알맹이 없는 겉치레와 같은 것이며 세상을 어리석고 못나게 만드는 시초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다운 사람은 두터운 쪽에 머물러 있고 엷은 곳에 머무르지 않으며 알맹이 있는 곳에 머물고 겉치레 쪽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와 지를 버리고 도를 택하는 것이다.
▶ 老子 도덕경 제39장 - 높은 것은 낮은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태초에 하나를 받아 얻은 것이 있으니 하늘이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맑고 땅이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편안하며 신은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신령하고 골짜기는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가득 차며 만물이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생겨나고 임금은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천하를 곧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게 만든 것이 곧 그 하나이다.
하늘이 맑지 못하다면 아마도 찢어질 것이고 땅이 편안하지 못하다면 아마도 꺼질 것이며 신이 영험하지 못하다면 아마도 신의 기능이 끝날 것이고 골짜기가 가득하지 못하다면 아마도 세상이 메마를 것이며 만물이 생겨나지 못한다면 아마 아무 것도 없을 것이고 만일 임금이 곧게 하지 못하고 높은 것만을 귀하게 여긴다면 아마도 그 나라는 파멸할 것이다.
그러므로 낮은 것을 귀하게 하여 근본으로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밑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임금은 스스로 외롭다 덕이 부족하다 선하지 못하다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칭송 받는 명예를 원하게 되면 도리어 명예는 없어지게 되나니 찬란하게 빛나는 옥같이 되기를 원하지 않고 대굴대굴 돌처럼 구르는 것이다.
▶ 老子 도덕경 제40장 -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
反者, 道之動, 弱者, 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이 도의 작용이다. 세상의 만물은 천지음양의 기운인 유에서 나오고 유는 형체가 없는 도인 무에서 나온다.
▶ 老子 도덕경 제41장 - 큰 그릇은 더디 이루어진다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참으로 뛰어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힘써 그것을 실천하는데 중간 정도의 사람은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하는 태도를 취하고 아주 정도가 낮은 사람은 도를 들으면 숫제 같잖다는 듯이 크게 웃고 만다. 그들에게 비웃음을 살 정도가 아니면 참다운 진리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격언이 있다. 참으로 밝은 길은 얼른 보기에 어두운 것 같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얼른 보기에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며 펀펀한 길은 얼른 보기에 울퉁불퉁한 것처럼 보인다.
최상의 덕은 골짜기처럼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참으로 희고 깨끗한 것은 얼른 보기에 우중충해 보이며 참으로 넓고 큰 덕은 얼른 보기에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확고부동한 덕은 얼른 보기에 구차스러워 보이고 참으로 진실한 덕은 얼른 보기에 절조가 없는 것처럼 보이며 다시없이 큰 네모 난 것은 그 구석을 가지지 않는다. 참으로 위대한 인물은 보통 사람보다 그 성취가 늦고 다시없이 큰 소리는 도리어 그 소리가 귀에 잘 들리지 않으며 더없이 큰 형체를 가진 것은 도리어 그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 말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도는 숨어서 모양이 보이지 않고 사람의 말로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도란 것은 만물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고 그러면서 그 존재를 온전히 해준다.
▶ 老子 도덕경 제42장 - 힘만 믿고 설치는 자는 제 명대로 살지 못한다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도가 하나의 기운을 낳고 하나의 기운이 나뉘어 음과 양 두 기운을 낳고 음과 양 두 기운이 합하여 제 삼의 기운이 되었고 그 세 기운이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의 기운을 등에 지고 양의 기운을 앞에 안아 충화의 기운에 의해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고 부덕하며 선하지 않은 것을 싫어하지만 임금은 스스로 외롭고 부덕하며 불선함을 숨기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은 손해가 이익이 되기도 하고 이익이 손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교훈으로 삼는 것을 나 또한 교훈으로 삼고 싶다. 힘을 믿고 앞세우는 자는 제 명대로 살지 못한다. 나는 이것을 가르침의 교훈으로 삼으려 한다.
▶ 老子 도덕경 제43장 -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 無有入無間.
세상에서 제일 무르고 연한 물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단단한 쇠며 돌을 마음대로 다루고 자신의 일정한 모양을 갖지 않는 물은 틈이 없는 곳으로도 마음대로 스며든다.
물의 예로 나는 부드럽고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삶 무위의 처세의 유익함을 아는 것이다. 말을 하지 않는 가르침과 무위의 삶의 유익함의 예로 이 세상에서 물을 따를 만한 것이 없다.
▶ 老子 도덕경 제44장 - 때를 알아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명예와 생명 중 어느 것이 절실한가. 생명과 재산 중 어느 것이 소중한가. 얻는 것과 잃는 것 중 어느 것이 괴로운가. 지나치게 바깥 것에 집착을 하면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너무 많이 재물을 쌓아 두면 결국은 그 만큼 잃게 된다. 만족할 줄 알면 부끄러운 변을 당하는 일이 없고 적당히 그칠 줄 알면 위험한 꼴을 당하지 않아 오래도록 편안히 있을 수 있다.
▶ 老子 도덕경 제45장 - 완전한 것은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참으로 완성되어 있는 것은 어딘가 잘못 되어진 것처럼 보이나, 아무리 써도 못 쓰게 되는 일이 없으며, 참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언뜻 비어 있는 듯 보이나 쓰고 또 써도 부족함이 없다. 참으로 곧은 것은 도리어 굽은 것처럼 보이고, 참으로 잘하는 것은 어딘가 서툴러 보이며, 참으로 잘 하는 말은 어눌한 것처럼 들린다. 분주하게 움직이면 추위를 이길 수 있고, 고요히 있으면 더위가 물러가게 된다. 그러므로 맑고 고요하면 천하의 기준이 된다.
▶ 老子 도덕경 제46장 - 만족 할 줄 알면 부족함이 없다
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천하에 도가 있으면, 병마는 거름 내는 농마로 바뀌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농마도 징발되어 병마가 된다.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환난은 없고 얻으려고만 하는 욕심보다 더 큰 허물은 없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를 만족할 줄 알면 언제나 부족함이란 없다.
▶ 老子 도덕경 제47장 - 참 지식은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不出戶, 知天下, 不窺爽,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세상을 알며, 창으로 내다보지 않아도 하늘의 이치 알게 된다. 밖으로 알아보려고 나가면 나갈수록 참 지식은 작아져 아는 것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나돌아다니지 않아도 참다운 것을 알고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이름을 붙일 수 있으며 힘쓰지 않아도 절로 이루게 된다.
▶ 老子 도덕경 제48장 - 하지 않아도 하지 못함이 없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학문을 하면 지식이 나날이 늘어 가고 도를 행하면 날마다 욕심이 줄어든다. 줄이고 또 줄이면 무위에 이른다. 무위에 이르면 하지 않아도 못함이 없다. 세상은 언제나 무위로써만 얻게 된다. 일을 꾸미면 천하를 얻을 수 없다.
▶ 老子 도덕경 제49장 - 성인은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성인은 변하지 않는 고정된 마음이 없고 모든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한다. 성인은 선한 사람은 선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선하지 못한 사람도 선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성인의 덕이 참으로 선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사람도 진실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도 진실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성인의 덕이 참다운 진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자기 개인의 주의와 주견을 세우지 않고 다만 온 백성의 마음을 모아 자기의 마음을 삼는다. 그래서 백성은 모두 성인의 이목을 주시하지만 성인은 모든 백성을 무지 무욕의 어린아이 같게 한다.
▶ 老子 도덕경 제50장 - 삶에 집착하지 않으면 죽음도 없다
出生入死. 生之徒十有三, 死之徒十有三.
사람들은 삶에서 나와 죽음으로 들어간다. 오래 사는 사람이 열 명중에 세 명쯤 있고, 일찍 죽는 사람도 열 명중에 세 명쯤 있다. 또한, 오래 살 수 있는데도 공연히 움직여 죽음으로 가는 사람도 열 명중에 세 명쯤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너무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삶을 잘 지켜 길러나가는 자는 육지를 여행해도 외뿔소나 호랑이를 만나지 않고 군대에 들어가도 갑옷을 입지 않는다. 외뿔소도 그 뿔을 들이밀 틈이 없고, 호랑이도 발톱을 들이댈 틈이 없으며. 병사도 칼날을 쓸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에게는 죽음이 없기 때문이다.
▶ 老子 도덕경 제51장 - 생육하고도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 莫不存道而貴德.
만물은 도에서 나오고 덕이 그들을 기르고 물체마다 형체가 있게 하며 환경에 따라 그들을 성장시킨다. 만물은 도를 존경하지 않는 것이 없고 그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없다. 도를 존경하는 것과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에서 태어나고 덕이 그를 기르고 생장시키고 육성시키며 형태와 질을 주어 기르고 돌봐 준다. 도는 만물을 낳지만 소유하려 하지 않고 만들었지만 자랑하지 않고 길러내면서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을 현묘한 덕이라 한다.
▶ 老子 도덕경 제52장 - 욕망을 막으면 근심이 없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세상에는 처음이 있으니 그것을 천하의 어머니라 한다. 이미 모체를 알았으니 돌이켜 그 자식을 알 수 있다. 이미 자식을 알고 돌이켜 그 어머니를 지키면 몸이 다할 때까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욕망의 구멍을 막고 문을 잠그면 몸이 다할 때까지 근심이 없을 것이고 욕망의 구멍을 열고 번거로움을 더하면 몸이 다하도록 고난을 벗어나지 못한다. 작은 것을 잘 보는 것을 밝다고 하고 부드러움을 지켜 나가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그 빛을 이용하여 밝음으로 돌아간다면 몸에 재앙이 닥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을 떳떳한 도를 지키는 것이라 한다.
▶ 老子 도덕경 제53장 - 얕은 지혜가 생기니 위험한 지름길을 찾는다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나에게 약간의 지혜가 있다면 무위의 큰길을 거닐며 오직 사도에 잘 못 빠질까 두려워 할 것이다. 대도는 평탄한데 사람들은 위험한 지름길을 좋아한다. 조정은 깨끗한데 농촌은 황폐하고 창고는 텅 비어 있다.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허리엔 날카로운 칼을 찾으며 맛있는 음식을 싫도록 먹고 재물은 남아돈다. 이러한 것을 도둑의 사치라 한다. 어찌 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 老子 도덕경 제54장 - 도의 효능은 넓고도 커서 끝이 없다
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以祭祀不輟,
확고히 세운 것은 쉽게 뽑히지 않고 제대로 안은 것은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도를 지키어 나가면 자손의 제사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도로 몸을 다스리면 그 덕은 참된 것이 되고 도로 가정을 다스리면 그 덕은 여유가 있게 되고 도로 고을을 다스리면 그 덕은 오래도록 이어지고 도로 나라를 다스리면 그 덕은 나라를 풍족히 하고 도로 천하를 다스리면 그 덕은 천하에 두루 미친다. 그러므로 몸으로 몸을 보고 가정으로 가정을 보고 고을로 고을을 보고 나라로 나라를 보고 도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본다. 무엇으로 세상이 그리되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도의 광대무변한 효능에 의해 알 수 있다. 자연의 도가 아닌 것은 곧 막힌다.
▶ 老子 도덕경 제55장 - 덕이 깊음은 어린아이와 같다.
含德之厚, 比於赤子, 蜂채훼蛇不석, 猛獸不據, 攫鳥不搏.
덕을 두터이 품은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아 벌도 전갈도 뱀도 쏘거나 물지 않고 맹수도 덤비지 않고 사나운 새도 덮치지 않는다. 뼈는 약하고 근육은 부드럽지만 쥐는 힘은 강하다. 암수의 교합에 대해 아직 모르지만, 생식기가 저절로 일어서는 것은, 정기가 극치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종일을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조화가 극치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조화를 아는 것을 변함이 없는 도라 하고, 변함없는 도를 아는 것을 밝은 지혜라 한다. 무리하여 연명하는 것을 좋지 못한 징조라 하고, 마음으로 기를 다스려 쓰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만물의 기세가 너무 왕성하면 곧 쇠퇴하는 것을, 일컬어 영원히 변치 않는 도가 아니라 한다. 자연의 도가 아닌 것은 금방 그치고 만다.
▶ 老子 도덕경 제56장 - 아는 사람은 말하지 많지 않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紛,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참으로 알지 못한다. 감각의 구멍을 막고 욕망의 문을 닫으며 예리함은 무디게 하고 복잡함은 풀어 없애며 앎의 빛을 흐리게 하여 혼탁한 먼지와 동화된다. 이것을 도와의 현묘한 합일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묘한 합일을 이룬 사람은 얻어 친근히 여기지 않고, 소홀히 여기지도 않으며 얻어서 이롭다 여기지 않고, 해롭다 여기지도 않으며 얻어서 귀히 여기지 않고, 천히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천하에 더할 수 없는 가치가 된다.
▶ 老子 도덕경 제57장 - 법령이 많을수록 도둑은 는다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나라는 정의로 다스려야 하고 전쟁은 기이한 계교로 한다. 하지만 천하는 행하지 않음으로 얻을 수 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이것에 의해서다. 세상에 규제하는 것이 많을수록 백성들은 가난해 지고 백성에게 문명의 이기가 많을수록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사람들이 기교를 많이 부릴수록 기이한 물건이 많이 나오고 법령이 많이 정비되면 될수록 도둑은 더 많이 늘게 된다. 성인이 말하기를, 내가 무위로 대하면 백성들은 감화되고 내가 고요히 있는 것을 좋아하면 백성이 바르게 되고 내가 무위무사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풍족해 지고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통나무처럼 순박해진다.
▶ 老子 도덕경 제58장 -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정치가 대범하면 백성들이 순박해 지고 정치가 분명하면 백성들이 다투게 된다. 화는 복이 의지하는 곳이고 복은 화가 숨는 곳이다. 누가 그 궁극을 아는가. 절대적인 올바름이란 없다. 바른 것이 기이한 것이 되고 선한 것이 요사한 것으로 변한다. 사람들이 상대성을 깨닫지 못한지 오래다. 그래서 성인은 반듯하지만 남에게 그리 되라 하지 않고 자신이 청렴하다고 남 또한 그렇게 만들려 하지 않고 자신이 바르다고 그대로 밀고 나가려 하지 않고 영지의 빛을 간직하고도 내 비치지 않는다.
▶ 老子 도덕경 제59장 - 검소함은 도를 따르는 것이다
治人事天, 莫若嗇, 夫唯嗇, 是以早服,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검소함이다. 오직 검소한 것을 일찍 도를 따른다 하고 일찍 도를 따르는 것을 덕을 쌓는다고 한다. 덕을 많이 쌓으면 극복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되고 극복 못할 것이 없으면 아무도 그 끝을 알지 못한다.
무한한 기능을 가지게 되면 나라를 보존할 수 있다. 나라의 어머니인 검소함이 나라를 오래 보존한다. 이것을 뿌리를 깊게 하고 근본을 굳게 하여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도라 한다.
▶ 老子 도덕경 제60장 - 도로 세상을 다스려라
治大國, 若烹小鮮, 以道리天下, 其鬼不神,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작은 물고기를 삶는 것과 같다. 도로 세상을 다스리면 귀신도 신령한 힘을 잃는다. 귀신이 힘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 힘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귀신의 힘이 사람을 해치지 않을 뿐더러 성인도 역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귀신과 성인이 서로 해치지 않으므로 그 덕이 어울려 백성에게 돌아간다.
▶ 老子 도덕경 제61장 -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 겸손해야 한다
大國者下流, 天下之交, 天下之牝, 牝常以靜勝牡, 以靜爲下,
큰 나라는 강의 하류와 같아서 세상의 모든 흐름이 만나는 곳이고 또한 천하가 사모하는 암컷이기도 하다. 암컷은 항상 고요함으로 수컷을 이기고 고요함으로 항상 아래에 있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 자신을 낮추면 작은 나라를 얻게 되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게 자신을 낮추면 큰 나라가 그를 받아들인다. 어떤 것은 낮은 자세로서 남을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낮은 자세로써 남에게 받아 들여 진다. 큰 나라가 바라는 것은 아울러 기르려는 것뿐이고, 작은 나라는 속하여 보호를 받고자 할 뿐이다. 만약 양쪽이 각기 바라는 대로하고 싶다면 마땅히 큰 쪽이 아래가 되어야 한다.
▶ 老子 도덕경 제62장 - 선하지 않은 사람도 도를 간직하고는 있다
道者, 萬物之奧, 善人之寶, 不善人之所保,
도는 세상 만물의 근원이다. 선한 사람이 보물로 삼는 것이고 선하지 못한 사람도 간직하고는 있다. 아름다운 말로 높은 지위를 얻게 되고 선한 행동으로 남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선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버릴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라가 서고 정승이 임명되었을 때 구슬을 받들어 사두마차로 나아가 바치는 것보다 가만히 앉아서 도로 나가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옛부터 이러한 도를 소중히 해온 것은 무슨 까닭인가. 구하지 않아도 얻고 죄가 있어도 용서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이다.
▶ 老子 도덕경 제63장 - 큰 일은 사소한 데서 시작된다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무위를 생활태도로 하고, 일없는 것을 일로 하며 맛없는 것을 맛으로 한다. 작은 것은 크게 하고, 적은 것은 많게 하며 원한은 덕으로 갚는다. 어려운 일은 어려워지기 전에 손을 쓰고 큰일은 커지기 전에 해결한다. 세상의 어려운 일은 언제나 쉬운 데서 일어나고 큰일은 언제나 작은 데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무위의 성인은 결코 큰일을 하려 하지 않으며 이리하여 큰 일을 이룩하는 것이다. 대체로 쉽게 하는 승낙은 믿기가 어렵고 쉽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므로 무위의 성인은 쉬운 일도 조심하여 다루고 이리하여 조금도 어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 老子 도덕경 제64장 - 무리하게 만들어 더하지 않는다.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泮, 其微易散.
안정된 것은 유지하기 쉽고, 일이 시작되기 전에는 손쓰기 쉽다. 굳어 있지 않은 것은 풀기가 쉽고 드러나지 않는 작은 것은 흩어지기 쉽다. 일이 생기기 전에 잘 처리를 하고 어지러워지기 전에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털끝 만한 싹에서부터 자라고 아홉 층의 높은 대도 터닦기에서 시작되며 천리 길을 가는 것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성공하려 애쓰는 자는 실패를 하고 쥐고 놓지 않으려는 자는 놓치게 된다.
그러므로 무위의 성인은 무리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가 없고 잡고 늘어지지 않기 때문에 놓치지 않는다. 사람이 일을 함에 있어 언제나 다 되어가고 있을 때 실수를 하게 된다. 마지막 손질을 처음처럼 한다면 실패는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욕심이 없음을 욕심으로 삼고 얻기 어려운 보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널리 배우지 않는 것을 배움으로 하고 사람들의 지나친 행동을 본래로 되돌리고 만물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하여 무리하게 스스로 만들어 더하지 않는다.
▶ 老子 도덕경 제65장 - 순리로 나라를 다스려라
古之善爲道者, 非以明民, 將以愚之, 民之難治, 以其智多,
옛날에 무위의 도를 잘 닦은 사람은 백성들을 총명하게 하지 않고 백성들을 순박하게 만들려고 하였다.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에게 영특한 지혜가 많았기 때문이다. 옛부터 나라를 지혜로 다스리면 나라에 해롭고 지혜로 다스리지 않으면 나라에 복이 있다고 했다. 이 두 가지 모두가 정치의 법칙임을 알아야 한다. 항상 이 법칙을 아는 것을 현덕이라 한다. 현덕은 심오하고 멀어 세속과는 반대 이나 세속을 부정한 뒤 크나큰 순리에 이르게 된다.
▶ 老子 도덕경 제66장 - 남의 위에 서려거든 자신을 낮추어라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故能爲百谷王,
강과 바다가 계곡들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계곡의 왕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 위에 있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겸손한 말로 자신을 낮추고 백성의 앞에 서고자 한다면 반드시 몸을 남의 뒤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성인은 위에 있어도 백성들이 짐스러워 하지 않고 앞에 있어도 방해된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받들면서도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 다투려 않기 때문에 누구도 그와 다툴 수가 없는 것이다.
▶ 老子 도덕경 제67장 - 자비심을 가지고, 검약하며, 앞서려 하지 마라
天下皆謂我道大, 似不肖, 夫唯大, 故似不肖, 若肖久矣, 其細也夫,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의 도는 크기는 하지만 도답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크기 때문에 도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만일 도처럼 보였다면 오래 전에 보잘 것 없이 되었을 것이다.
내게 세가지 보물이 있어 간직하여 소중히 여기니 그 첫째가 자비심이고, 둘째는 검약이고 셋째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자비심이 있으므로 용감할 수 있고 검약하기 때문에 널리 베풀 수 있고 남의 앞에 서지 않기 때문에 기량 있는 자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비심을 버리고 용감하려 하고 검소함을 버리고 풍족하기만을 바라며 뒤에 따르지 않으면서 앞장서려고 하는데 그것은 죽음을 향해서 가는 것이다. 자비심을 가지고 싸우면 승리할 수 있고 자비심으로 지키면 견고하게 지켜진다. 하늘이 그를 구해주려 하며 자비심을 가지고 보호하는 것이다.
▶ 老子 도덕경 제68장 - 사람을 잘 쓰려면 자신의 몸을 낮춘다
善爲士者不武, 善戰者不怒, 善勝敵者不與, 善用人者爲之下,
훌륭한 선비는 무력을 쓰지 않고 싸움을 잘하는 자는 화내어 흥분하지 않으며 적을 잘 이기는 자는 적과 정면으로 싸우지 않고 사람을 가장 잘 쓰는 자는 그들 앞에서 몸을 낮춘다. 이것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하고 이것을 남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라 하며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오래된 지극한 도이다.
▶ 老子 도덕경 제69장 - 싸움을 슬피 여기는 쪽이 이긴다
用兵有言, 吾不敢爲主而爲客, 不敢進寸而退尺,
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공격에 주동이 되려 말고 피동이 되어 한치의 나아감 보다 오히려 한자씩 물러나라. 이것을 가리켜 걸음 없는 걸음을 걷고 팔이 없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무기 없는 무기를 잡고 적이 없는 적을 공격한다 라고 한다. 화중에 적을 경시하는 것보다 더 큰 재난은 없어 적을 가볍게 보게 되면 나의 모든 보물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군사를 동원하여 서로 결전하게 될 때에는 싸움을 슬피 여기는 쪽이 승리하게 된다.
▶ 老子 도덕경 제70장 - 말에는 근원이 있다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내 말은 쉽고 따라 행하기도 쉬운데 사람들 중에 아는 자도 행하는 자도 없다. 말에는 근원이 있고 사물에는 주재자가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나를 모르는 것이다. 나를 아는 자는 드물고 나를 따르려는 자도 귀하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남루한 베옷을 입은 속에 구슬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 老子 도덕경 제71장 - 병을 병으로 알면 병이 되지 않는다
知, 不知, 上, 不知, 知, 病, 夫唯病病, 是以不病,
알고도 모르는 듯 하는 것이 좋은 것이고 모르면서 모두 아는 척 하는 것은 병이다. 병을 병으로 안다면 병이 되지 않는다. 성인이 병이 없는 것은 자기의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이 되지 않는다.
▶ 老子 도덕경 제72장 - 위엄을 버리고 무위를 택하라
民不畏威, 則大威至,
백성이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면 큰 위엄을 갖게 된다. 백성들이 사는 곳을 억압하지 않고 사는 방법을 싫어하지 않으면 싫어하는 것이 없게 되어 싫어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자신을 알지만 나타내려 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지만 귀하다고 여기지 않으므로 위엄을 버리고 무위를 택하는 것이다.
▶ 老子 도덕경 제73장 -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도 빠뜨리지 않는다
勇於敢則殺, 勇於不敢則活, 此兩者或利或害,
결단력이 강하면 죄인을 죽이고 결단력이 약하면 죄인을 살린다. 두 가지 행동에는 이로움도 있고 해로움도 있으니 하늘이 미워하는 그 사람을 어느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성인조차 오히려 어렵게 여기는 것이다. 하늘의 도는 싸우지 않고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잘 응하고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고 천연히 있으면서도 잘 도모한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도 빠뜨리지 않는다.
▶ 老子 도덕경 제74장 - 죽임 따위로 백성을 두려워하게 할 수 없다
民不畏死, 奈何以死懼之,
백성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죽임 따위로 백성을 두려워하게 할 수 없다. 만약 백성들이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게 해 놓고 죄를 지은 자를 내가 잡아서 죽인다면 어느 누가 감히 죄를 짓겠는가. 그러나 항상 죽이는 일을 맡은 자는 따로 있다. 죽이는 일을 맡은 자를 대신해서 죽이는 것은 목수를 대신해서 나무를 자르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러나 목수를 대신하여 나무를 자르는 자중 그 손을 다치지 않는 자가 드물다.
▶ 老子 도덕경 제75장 - 삶에 집착이 없는 자가 현명하다
民之饑, 以其上食稅之多, 是以饑, 民之難治, 以其上之有爲, 是以難治,
백성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은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거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이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지배자의 간섭이 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다. 백성이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지배자가 자신의 삶만을 지나치게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들이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다. 삶에 집착이 없는 사람이 삶을 소중히 여기는 자 보다 현명한 자이다.
▶ 老子 도덕경 제76장 - 부드러움이 강함보다 위에 있다
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萬物草木之生也柔脆, 其死也枯槁,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은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죽은 사람의 몸은 굳고 단단하다. 살아 있는 만물과 초목은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죽은 모든 것은 말라 딱딱하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은 것이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산 것이다. 군대가 강하면 승리하지 못하고, 나뭇가지가 강하면 부러지고 만다. 굳고 강한 것은 아래에 있고, 부드럽고 약한 것이 위에 있다.
▶ 老子 도덕경 제77장 - 남는 것을 덜어 부족한 곳에 더한다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擧之,
하늘의 도는 활 메우는 것과 같아서 높은 곳은 눌러 주고 낮은 곳은 올려 주며 남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곳에는 더해 준다.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부족한 곳에 주는데 인간의 도는 그 같지 않아서 부족한 것에서 덜어내 남는 쪽에 바친다. 누가 여유 있는 것으로 천하에 봉사할 것인가? 오로지 하늘의 도를 따르는 자 밖에는 없다. 성인은 일을 하되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공을 이루어도 그 곳에 머물지 않으며, 남보다 현명함을 나타내지 않는다.
▶ 老子 도덕경 제78장 -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天下莫柔弱於水而攻堅强者, 莫之能勝, 以其無以易之.
세상에 물처럼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없다. 그러면서도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기는 데 물보다 더 나은 것도 없다. 무엇도 그 본성을 바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약한 것이 억센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기는 것을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실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기에 성인의 말씀에 나라의 욕됨을 떠맡는 사람은 나라의 주인이고 천하의 불행을 떠맡는 사람을 천하의 왕이라 했다. 참으로 바른 말은 진실과 반대인 것처럼 들린다.
▶ - 老子 도덕경 제79장 - 하늘은 항상 선한 사람 편에 선다
和大怨, 必有餘怨, 安可以爲善,
큰 원한은 풀어도 앙금이 남으니 큰 원한을 푼다고 어찌 선이 되겠는가. 성인은 빚 문서를 지니고 있을 뿐 빚 독촉을 하지 않는다. 덕이 있으면 빚은 저절로 갚아지고, 덕이 없으면 빚을 억지로 받아 낸다. 하늘의 도에는 사사로움이 없고, 언제나 선한 사람 편에 선다.
▶ - 老子 도덕경 제80장 -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이 살아 수많은 도구가 있어도 사용하지 않게 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도록 하여 먼 곳으로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하면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타는 일이 없을 것이고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그것을 쓸 일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새끼줄을 묶어서 약속의 표시로 사용하게 하고 음식을 달게 여겨 먹게 하고, 의복을 아름답게 여겨 입게 하고 사는 곳을 안식처로 여기게 하고, 그 풍속을 즐기게 하면 바로 앞에 이웃나라가 있고 닭과 개의 소리 서로 들리는 곳에 있을 지라도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 - 老子 도덕경 제81장 - 진실한 말은 아름답게 꾸미지 않는다.
信言不美, 美言不信. 善者不辯, 辯者不善.
진실한 말은 아름답게 꾸미지 않고 아름답게 꾸민 말에는 진실이 없다. 참다운 사람은 변명을 하지 않고 변명을 잘하는 사람은 참다운 사람이 아니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고 많이 아는 사람은 참으로 알고 있지 못하다. 성인은 자신을 위해 쌓아두는 일이 없이 남을 위함으로 더욱 있게 되고 남에게 무엇이든 다 주지만 그로 인하여 더욱 넉넉해진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하지만 해치지 않고 성인의 도는 일을 행하여 다투지 않는다. |
출처 : 향기로운 세상
'노자 도덕경(1장~81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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