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엄마 수업

프롤로그 *여자가 엄마로 산다는 것*

혜월(慧月) 2022. 11. 21. 12:51

 

엄마 수업

 

프롤로그  -  여자가 엄마로 산다는 것

 

아이가 품 안에서 방긋방긋 웃고 아장아장 걸으며 재롱을 부릴 때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엽지요.   그러던 아이가 크면서는 

어떤가요?  슬슬 말을 안 듣기 시작하면서 마치 부모 속을 썩이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려고 결혼하고,

행복하려고 자식을 낳아요.  그런데 살다 보면 불행하기 위해 결혼하고,

불행하기 위해 자식을 낳은 것처럼 괴로워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이길 수 없다.

 

부모 자식간의 대화가 길어지면 큰소리가 나는 경우가 많아요. 입씨름이

길어진다는 것은 누가 옳은가 그른가를 두고 시비를 가린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과연 부모와 자식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이 말이 진리입니다.

자식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그러려면 부모가 먼저 

정을 딱 끊어야 해요.  그런데 부모는 자녀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크기

때문에 정을 끊기가 힘들어요.  누구보다 자식이 그 사실을 더 잘 압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자식을 이기기 힘든 거예요.

 너덧 살 먹은 아이가 엄마에게 저항하는 방법은 떼쓰는 거예요.

떼쓰기 중에서도 제일 강력한 것이 밥 안 먹기지요.  밥 먹다가 숟가락을 

탁 놓고 가면 엄마는 밥그릇 들고 따라다녀야 합니다.

 그런데 중학생 쯤 되면 애가 밥 안 먹는다고 해서 부모가 눈 한번

꿈쩍하지 않아요.  이때 부모를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은 집 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부모는 아이를 찾으러 정신없이 다니게 됩니다.

 그러다 스무 살이 넘으면 집 나가는 정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때는 

죽어 버리겠다는 말로 부모를 위협합니다.  그럼 어떤 부모라도 

자식에게 지게 돼 있습니다.

 반면 스님인 저는 부모가 아니어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게 오히려 

간단합니다.  아이가 밥 안 먹는다고 떼쓰면 밥 그릇 치워 버리고 절대

밥을 안 줘요.  제발 밥 좀 달라고 사정할 때까지 안 주면 아이 버릇이

고쳐집니다. 집 나간다고 하면   "그래? 나가!"  하고 문을 걸어 잠급니다.

그렇게 하면 나쁜 버릇을 간단하게 고칠 수 있는데, 부모는 마음이 약해서

그렇게 못화는 것예요.  이게 부모들의 약점이에요.

 따라서 애당초 자식과 끝까지 싸우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식이 하자는 대로 따르라는 말은 아닙니다.  아이가 고집을 

피우면 얘기를 들어보고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하든지 부모 방식대로

해버리든지 빨리 결정해야 합니다.  오래 끌다 보면 결국엔 부모가

지게 돼 있어요.

 자식과 협상을 할 때에는 되도록 빨리 끝내고,  안 되면 포기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 낭비하고 화만 나고 자식을 미워하게

돼요.  부모가 자식을 미워하는 것은 자식이 부모를 미워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괴롭습니다.  그러니 자식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무조건

부모 손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아이, 본 대로 물드는 존재

 

 자식을 이기지 못하면서도 부모는 자식 걱정을 놓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식이 말을 안 들어요, 공부를 안 해요, 성적이 나빠요,

대학시험에 떨어졌어요.'  이처럼 아이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분이 참 많아요.  그러면서 똑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이런저런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고칠수 있을까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 부모부터 고치십시오."

 부모는 애를 문제 삼아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갖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보지 못하면 결코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 문제의 근본을 보려면, 먼저 부모와 자녀의 인연 관계를

살펴봐야 합니다.

 아이는 생물학적으로 엄마 아빠의 유전자를 받아서 태어납니다.

밖으로 드러난 모습이 엄마와 아빠 중 누군가를 조금 더 닮았다고 해서

그것 보고 엄마 닮았다 아빠 닮았다 말하지만 몸 전체 구성으로 볼때는

절반씩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엄마에게 없는 것, 아빠에게 없는 것이 아이에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유전자는 밖으로 전부 드러나는 게 아니라 잠재된

것도 있어서 그것이 후손에게 나타날 수 있어요.

 그러면 아이는 유전자를 준 부모만을 닮을까요?  만약에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어 10년 넘게 키웠다면 아이의 생각이나 행동은 낳아 준

부모를 닮을까요.  길러 준 부모를 닮을까요?  당연히 길러 준 부모를

닮습니다.  생물학적 유전자는 물려받지 않았지만 음식 먹는 습관, 

생각하는 방식, 말하는 버릇 등이 모두 길러 준 부모를 닮아요. 그러니까

'엄마'라는 말은 낳은 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정확하게는 '기른 사람'을

뜻합니다.

 또 생물학적으로 볼 때,  아이는 엄마와 아빠를 절반씩 닮지만 행동이나

사고방식은 대체로 길러 준 엄마를 닮습니다.  만약 아이를 어릴 때

할머니가 키웠다면 아이의 마음 바탕을 형성하는 핵심은 할머니를 

닮게 됩니다.  밖으로 '할머니'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엄마'라고 할 수

있어요.  만약 유모가 아이를 키웠다면, 호칭은 유모지만 아이의

마음에서는 유모가 곧 엄마입니다.

 만약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한다면 모두 길러 준 엄마로부터 배운 거예요.

배운다는 생각도 없이 받아들였다가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낸

것이지요.  이 문제 행동이 어릴 때부터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사춘기가 되면서 부쩍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자녀가 사춘기가 되어 전에 안 하던 행동을 하면 

"사춘기를 심하게 앓는다",  "친구 잘못 사귀어서 이상해졌다"라며

남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렇게 될 씨앗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씨앗이 나쁜 친구를 만나거나 환경이 변하거나

엄마 아빠와 의견 대립이 일어났을 때 싹을 틔운 거예요.  씨앗이 

없었다면 싹이 트지 않겠지요.

 그렇다면 이 씨앗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업(業)은 한

개인이 스스로 짓는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어린 시절에 형성되는 업은 아이가 짓는 게 아니라 부모, 

특히 엄마로부터 주어지듯이 본받아 형성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아이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지어 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만약 지금 내 자식이 사랑스런 아이가 아니라 웬수처럼 

느껴진다면 바로 부모, 그중 기른 엄마가 뿌린 씨앗의 결과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여자가 아닌 엄마다

 

오늘날 많은 부모가 자식을 남 보기에 좋은 물건처럼 취급합니다.

얼굴 예쁘고, 신체 건강하고, 공부 잘하고, 말 잘 듣고 그런 아이를 

원해요. 그래서 좋은 옷을 입히고, 값비싼 음식을 먹이고, 과외를 

시키고, 유학을 보내면서 부모 노릇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다 착각이에요.  아이들은 이러한 조건 없이도 부모의

사랑만 있다면 잘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물질적인 

조건이 다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부모의 따뜻한 품을 느끼며

자라지 못하면 아이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부부가 이이를 갖기 전 마음의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화합하고 사랑할 때 아이를 가져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긴 상태에서 아이가 생기면, 그 갈등이 아이에게 주는 피해는 

엄청납니다.왜냐하면 아이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엄마의 상태에

고스란히 영향을 받게 돼요. 불안과 초조, 분노와 갈등의 감정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겁니다. 그것이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큰 영향을 줍니다.

 자식을 심성이 건강한 사람으로 키우려면, 먼저 부모의 심리가 안정

되어 있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느냐 가난하느냐는 별 상관이

없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과 같이 맞춰 살 마음의

준비가 덜 됐다 싶으면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좋아요. 그래도 꼭

결혼하고 싶으면 결혼은 하더라도 자식을 안 낳는 게 좋습니다. 만약

자식을 낳겠다고 결심했다면 정말 그 아이를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서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의무예요. 그렇지 않으면 장난감을 가지고 놀든지 강아지를 

사서 키우며 놀면 돼요.  남들 다 한다고 나도 따라 자식을 낳아서

왜 불행하게 합니까?

 특히 여자는 자식을 낳고서도 혼자 몸일 때와 같은 연약한 여자의

심성으로 살면 자식을 잘 키울 수 없습니다. 이런저런 자극에 흔들리며 

불안해하고,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고 성질내던 내 습관대로 아이를

키우면, 아이도 엄마처럼 불안정하고 분노가 많은 사람이 됩니다.

 아이가 건강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행복하려면 먼저 엄마부터

마음의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불안한 여인의

마음이 아니라, '내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킨다'는 굳건한

엄마의 마음을 가져야 해요. 그래야 아이가 그런 엄마의 마음을 지지대

삼아서 잘 자랍니다.

 만약 남편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면 어떨까요?

심리적으로 안정이 안 되겠지요?  그러면 아이의 마음이 불안해져요.

따라서 아이 키우는 엄마는 언제나 남편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또 경제적으로 곤궁하다고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마음의 

안정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에도 짜증을 내는 대신 편안한 마음으로 

검소하게 살면서 아이들이 주눅 들지 않도록 다독일 수 있어야 합니다.

 엄마는 그 어떤 조건에서도 자식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 있어요.

여자로서가 아니라 엄마로서의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자식에게 엄마는

세상이고 우주이며 신입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세요. 그럼 부모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잖아요. 엄마가 자신에게 준 상처가 평생 나를 괴롭히고 있고

그때의 애정결핍으로 지금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엄마가 자식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는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모가 자신을 

보지 않고, 자식의 문제만 보니까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결혼을 했으면 상대에게 맞춰 살 의무가 있는데 제 방식대로 살겠다고

고집하고, 애를 낳았으면 아이를 전적으로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

그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자기 성질대로 사니까 결국 그 과보가 따르는 

겁니다. 이것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모르는 데서 오는 고통이에요. 그래서 수많은 

관계 중 부모와 자식이 가장 아름다운 관계인데도 스스로 부모 자식간을

원수지간으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니 '자식이 아니라 웬수'라고 자식을 탓하기 전에, 부모로서 나는

어떤 마음인가를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그러면 바로 그 자리에,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엄마 마음이 생겨날 수 있어요.  그 마음이 

없고서는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위해 온갖 정성을 쏟아도 자식은 고통을

겪습니다. 아무리 큰 부모의 사랑이라 해도 그 사랑을 부모 방식대로

전한다면, 자식이 다 좋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에요. 나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했지만 자식에게는 억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걸 모르면

"나는 너휘들을 이렇게 아끼고 사랑하는데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어!"

하는 원망만 하게 됩니다.

 '모든 문제는 자식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이 이치를 이해할 때 비로소 자식 문제를 해결하고 진정한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2011년 10월      법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