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최강록)

고깃덩어리를 입에 문 개

혜월(慧月) 2024. 4. 13. 10:37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깊이 공감하는 태도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다른 개라고 착각해

입에 문 고깃덩어리마저 잃어버린 어리석은 개의 이야기

 

*고깃덩어리를 입에 문 개*

욕심 많은 개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먹을 게 있으면 재빨리

달려들어 낚아챈 후 멀리 가서 혼자 먹곤 했죠. 아무리 양이

많아도 누군가와 나눠 먹는 일이 없었습니다. 힘세고 성질이

불같아 누가 나무랄 수도 없었습니다. 개는 그렇게 사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잔칫집에 가서 실컷 얻어먹고 고기 한 덩어리를 

챙겨 입에 문 채 기분 좋게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강을 만났습니다. 강을 건너야 집에 다다를 수 있었기에

느긋한 자세로 다리를 건넜습니다. 중간쯤 가다가 무심코

다리 아래를 내려다봤습니다.

   순간 개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강물 위로 듬직한 개

한 마리가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입에 문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입에 문 고깃덩어리를 노리고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약해 보이면 안 돼. 기선을 제압해야 해.'

   개는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다리 아래에 있는 개를 독하게

노려봤습니다. 이제껏 자신의 살벌한 눈총 앞에 고개를 떨구며

꽁무니를 빼지 않은 동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강물 속의 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과

똑같은 자세로 마구 으르렁대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한판 

붙어보자는 태도였습니다. 움찔했지만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습니다.

   '이것 봐라? 하는 수 없지. 본때를 보여줄 수밖에...'

   개는 강물 속에서 자신을 향해 도전해 오는 개를 제압함과

동시에 그 입에 물고 있는 커다란 고깃덩어리마저 빼앗을 

궁리를 했습니다. 오늘은 참 운이 좋은 날이라고 여겼습니다.

   "멍멍멍!"

    개는 목청껏 큰소리로 짖었습니다. 번득이는 앞니를 훤하게

드러내면서 말이죠. 이런 호전적인 자세에 이제껏 꼬리를 

내리지 않은 상대가 없었습니다.

   한참 짖어댄 후 이제는 주눅이 들었겠거니 하고 강 아래를 

내려다봤습니다. 하지만 강물 속 개는 여전히 꿋꿋한 자세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한데 이상했습니다. 강물 속 개가 물고 있던 커다란 고깃덩어리가

없어진 겁니다. 그 큰 고깃덩어리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 허전한 건 자신의 입이었습니다. 꽉 물고

있던 고깃덩어리가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멍멍멍!"

   아무리 큰 소리로 울부짖어도 고깃덩어리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물고 있던 고깃덩어리는 속절없이 강물에 떠내려가버렸고,

강물 속 개가 물고 있던 고깃덩어리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

었으니까요. 허탈해진 개는 다리 위를 이리저리 오갈 뿐이었습니다.

 

# 나르시시즘 또는 자기애의 폐해 #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다른 개라고

착각해 입에 문 고깃덩어리를 빼앗으려다 자신의 고깃덩어리마저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개에 관한 우화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거나 들으면 누구나 개의 어리석음에 혀를 찹니

다. 그리고 과도한 욕심을 경계하죠. 지나친 탐욕에 사로잡히면 갖

고 있는 것마저 잃게 된다는 교훈을 되새깁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 나 자신을 돌아보면 어리석은 개처럼 과

도한 욕심과 지나친 탐욕에 사로잡힐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

다. 더 좋은 걸 갖고 싶고, 더 나은 걸 얻으려 하며,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 즉 소유욕은 인간의 본능이기도 합니다. 재물이나

명예, 권력에 대한 욕망은 물론 식욕, 성욕 등도 소유욕의 일종입

니다.

   없어서 소유를 갈망하는 게 아닙니다. 충분히 있지만, 타인이 가

진 게 더 좋고 멋지고 탐스러워 보여 그것까지 다 갖고 싶은 욕심

을 내는 겁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심리로 개인이 불행에 빠

지고, 가정에 불화가 생기며, 사회에 불안이 잉태됩니다. 부족과 부

족,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사이에 다툼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

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식들 간에 유산을 놓고 분쟁이 벌어집니

다. 재벌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수백억, 수십억 원의 재산 앞에서만 다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파트 한 채, 평소 관심도 없던 맹지 몇백 평, 통장에 든 현금 수

천만 원 때문에 형제자매들이 이전투구를 벌입니다. 심지어 장례

식장에서 얼굴을 붉히며 멱살잡이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 하기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내가

장남이니까, 내가 모셨으니까, 내가 제일 친하니까, 내가 제일 가

난하니까 더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속내는

욕심뿐입니다.

   정신분석학에선 자신에게 지나치게 애착을 갖는 태도를 '나르시

시즘(Narcissism)'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리비도(Libido,인간의 생

물학적인 성적 에너지)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우리말로 '자기애(自

己愛)'라고 번역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두고 이성의 육체를 보듯 하거나 스스로 자신을

애무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걸 말합니다. 거울 앞에 서서 아무리

봐도 아름답다며 자신의 얼굴과 몸매를 황홀하게 쳐다보는 것도

나르시시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미소년 나르키소스가 등장합니다. 그는 강

의 신 케피소스와 물의 님프 리리오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

름다운 소년이 된 그는 워낙 잘생긴 탓에 많은 젊은이의 애간장을

녹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존심이 강하고 도도해서 누구의 사랑도 허락하지

않았죠. 모두가 갈망했지만, 아무도 그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요정

에코도 그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나르키소스로부터

차디찬 거절을 당합니다.

   슬픔에 빠진 에코는 동굴 속에 숨어 울기만 하다가 몸은 사라지

고 목소리만 남게 되었죠. 이 소식을 들은 요정들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를 찾아가 나르키소스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하는

고통을 알게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네메시스는 나르키소스에게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벌을 줬습

니다. 그는 어느 날 물속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져버

렸습니다. 끊임없이 사랑을 구했지만, 상대는 묵묵부답이었죠. 지

친 그는 점점 야위어가다가 결국은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가 죽은 자리에 이름 모를 꽃 한 송이가 피어났습니다. 그 꽃

치 바로 수선화, 즉 나르시스입니다. 지나친 자기애를 뜻하는 나르

시시즘은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오스트리아의 생리학자 지그문트 푸로이

트에 의해 널리 알려진 용어 나르시시즘을 폭넓게 적용해보면, 자

신의 외모와 능력 등을 과신해 자기가 뛰어나고 믿거나 매사를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도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을 나르시시스트라고 하죠. 자신이 남보

다 잘하는 점이 있으면 지나친 과시와 자만에 빠지고, 남보다 뒤처

진 점이 있으면 심각한 자기비하에 빠집니다. 타인을 존중하거나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까닭에 협동이나 팀워크에 잘 적응하지 못

합니다. 타인은 자신의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공감하는 것 #

나르시시즘이 지나쳐 사회생활이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초래될 정

도면 '자기애성 성격장애(NPD,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를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가정이나 학교나 회사 등에서 자신이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 생각하며, 따라서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하고 대

우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자신을 제외한 타인 모두를 낮춰보고 무

시함으로써 공감력을 상실하는 등의 행동이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

는 게 특징입니다.

   그들은 권력과 성공 혹은 외모에 대한 집착과 우월감이 상당히

강합니다. 자신은 항상 주인공이고 타인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엑스트라라고 여기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다루거나 이용하려고 합니다. 이런 행동은 유년 초기부터 시작되

며 광범위한 상황에 걸쳐 발생하지만 아직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

습니다.

   나르시시스트나 자기애성 성격장애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잘못

이나 연약함 혹은 아픔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 발로 병

원을 찾지도 않습니다. 다른 문제가 있어 병원을 방문했다가 상담

하는 중에 증상을 발견하곤 합니다. 원인을 모르니 치료 또한 쉽지

않습니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내가 아닌 타인과 깊이 공감할 수 있

는 정서와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

이 이기적이긴 하지만, 내 부족한 점을 깨닫고 인정하며 늘 겸손한

자세를 갖추는 건 오랜 훈련과 연단이 필요한 일입니다. 과도한 욕

망과 탐심을 내려놓고 현재에 자족할 줄 아는 지혜 역시 쉽게 얻어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이나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일

은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모든 게

자기중심적이다 보니 비현실적인 생각에 가득 차 있습니다. 능력

과 재물과 권력과 지위에 대한 욕심이 지나칩니다. 아름다움에 집

착하고 이상적인 사랑을 꿈꿉니다.

   허황된 목표가 간혹 이뤄진다 해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목표를 향해 줄달음칩니다. 존경과 관심의

대상이 되고자 끊임없이 애쓰기도 하죠. 친구를 깊이 사귀는 것보

다 겉보기에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

합니다.

   자신에 대해 타인이 충고나 비판을 하면 견디지 못합니다. 결혼

생활에서도 배우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않을 때 심각한 다툼이 벌

어집니다. 이럴 경우,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부부 사이에

성 문제로 갈등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작은 걸 탐하다가

큰 손실을 당한다는 뜻이죠. 내 재주와 노력과 능력과 분수 이외의

것을 과도하게 욕심내거나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자족할 줄 아는 게 행복한 인생을 사는 지혜입니다.

   삶은 혼자 사는 게 아닙니다. 가족과 이웃과 사회와 더불어 사는 

겁니다. 독불장군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타인을 존중하고 인정해

야 나도 존중받고 인정받는 게 세상 이치입니다.

   고깃덩어리를 입에 문 개가 다리 위를 지나다가 강물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봤습니다. 잘생긴 개가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입에 문

걸 봤을 때, 다른 개도 충분히 잘생길 수 있고 고깃덩어리를 물고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더라면 그냥 묵묵히 자기 길을 갔

을 겁니다.

   그랬더라면 집에 가서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겠죠. 말을 하고

싶었거나 따지고 싶었더라면 다리 위에 고깃덩어리를 내려놓고 짖

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랬더라도 자기 고깃덩어리는 지킬 수 있

었겠죠.

   나르시시스트였던 이 개는 자만에 빠지고 욕심이 지나쳐 온 힘

을 다해 강물 속 개를 향해 짖어댔습니다. 그 결과 어렵사리 얻은

커다란 고깃덩어리는 강물 속으로 깊게 깊게 빠져들었습니다. 개

의 황당한 표정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삶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가족과 이웃과 사회와 더불어 사는 겁니다. 

독불장군은 행복할 수 없다.

타인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나도 존중받고 인정받는 게 세상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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