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인의 본분과 의지처
정토법문은 ‘타력구제’의 법문입니다. 여기서 ‘타’란 아미타불을 말하고, ‘력’은 대원업력을 말하지요. 따라서 아미타불의 증상연은 완전타력·절대타력이어서 전혀 자력을 말할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바다를 건널 때 이 언덕으로부터 저 언덕에 도착하는 것은 완전히 배를 의지하는 것으로, 만약에 배를 의지하지 않는다면 세계 수영챔피언이라도 피안에 도달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사바세계의 이 언덕에서 극락의 피안으로 가려고 한다면, 아미타불의 대원선을 의지하지 않고서 도달할 수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우리 범부들에게 설사 산선의 공덕이 있고, 나아가 정선의 공부가 있다 하더라도 왕생은 이런 것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만일 아미타불의 구제가 없고 아미타불의 영접이 없다면 우리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공덕이 많아도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설사 정선의 공부가 없고 설사 산선의 복덕이 없더라도 대원선을 타는 것을 의지한다면 여전히 왕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토법문은 절대타력·완전타력으로서, 아미타불의 타력으로 우리 시방중생들이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도록 회향해주시는 것입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우리가 염불정진하며 공덕을 쌓아서 회향왕생을 한다면, 이것은 자력이 아닌가요? 설사 아미타불의 내영이 있고 아미타불의 구제가 있더라도 만일 우리가 왕생을 발원하지 않고 만일 우리가 염불하지 않고 아미타불의 구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역시 왕생할 수 없을 것이며 아미타불께서도 우리를 구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발원하고 우리가 염불해야 한다면, 이것은 우리의 힘, 즉 자력이 아닐까요?”라고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아미타불께서 성취하신 대원업력이 없다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무슨 ‘힘’을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힘’이 없는 한, 지금 극락왕생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아미타불의 대원업력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미타불께서 우리를 부르시며 우리더러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欲生我國)’ 하라고 하셨으면 우리는 아미타불을 수순하여 ‘저 나라에 태어나기를 발원(願生彼國)’하고, 아미타불께서 우리더러 ‘내지 십념’을 하라고 하셨으면 우리는 전일하게 염불하여 부처님과 감응을 이루면 됩니다. 단지 이렇게만 하면 됩니다.
이 말은 선행을 실천하고 계율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사람으로서의 본분입니다. 마치 『관경』의 ‘삼복’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처신은 본래부터 ‘부모에게 효순하고 스승을 받들어 모셔야’ 하고, 불자라면 더욱 ‘자비로운 마음으로 살생하지 않고 십선업을 닦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출가한 스님이라면 ‘삼귀의를 수지하고 여러 가지 계율을 구족하며 위의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지요. 또한 대승의 법문은 스스로 믿고 남도 믿도록 가르치며 ‘보리심을 발하여 인과를 깊이 믿고, 대승경전을 독송하며, 다른 수행자들에게 권해야’ 하는 것으로, 이것은 모두 본분입니다.
이른바 ‘발보리심’은 우리가 오로지 정토법문만을 닦기 때문에 우리의 보리심은 곧 극락세계에 왕생하려는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만 하면 우리는 위로 불도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구제하며 보리심을 원만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한다면, 이런 사람은 당연히 인과를 믿을 것이며, 선악응보를 알고 육도윤회를 알기 때문에 사바세계를 싫어하여 버리고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하게 될 것입니다.
‘대승경전을 독송해야 한다’면 정토삼경, 즉 『무량수경』·『관무량수경』·『아미타경』을 독송할 수 있습니다. 이 삼부경이 대승 중의 대승인 것은 정토법문이 원돈圓頓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원’이란 염불만 하면 성불의 공덕을 원만히(원) 할 수 있고 염불만 하면 신속하게(돈) 성불할 수 있으니, 이 어찌 원돈이 아니겠습니까?
‘수행자들에게 권한다’는 것도, 스스로 믿고 남도 믿도록 가르치기 위해 우리가 염불로써 권장하고 인도한다면 어찌 가장 좋은 ‘수행자들에게 권하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진정한 대자대비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윤회를 벗어나 신속하게 성불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수행정진을 해도 생사해탈을 할 수 없으면 그것을 대자대비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윤회 중에 있으면 부모의 태에 들어가 환생을 해야 하고 인연을 만나면 다시 악업을 지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염불하여 생사해탈을 하는 동시에 남들도 염불하도록 가르침으로써 남들 역시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타인에 대한 대자대비입니다.
혜정법사 법문
정전스님 번역
츨처 순정시대 http://cafe.daum.net/sunsujeong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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