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어린 왕자 02

혜월(慧月) 2018. 5. 15. 12:59






02





그래서 나는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상대도 없이

홀로 지내왔는데,  육 년 전 어느 날 사하라 사막에서

문득 비행기 고장을 만나게 되었다.

비행기 엔진의 어딘가가 파손된 것이다.


정비사도 승객도 없이 혼자였으므로 나는

그 어려운 수리를 손수 해보겠다고 마음억었다.

내게 있어서 그것은 죽는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마실 물이 일주일분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첫날 밤,

나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만 리 떨어진 사막에서 잠이 들었다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뗏목을 타고

표류하는 난파자보다도 훨씬 더 고립된 신세였다.


그러니 해가 뜰 무렵,

어떤 기이한 목소리에 잠이 깬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목소리는 말했다.


"저기......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응?"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나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후닥닥 일어났다.

눈을 비비고 주위를 잘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아주 이상하게 생긴 조그만 아이가

나를 심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 있는 그림은 훗날 내가 그의 모습을 그린 그림들 중에서 가장

잘된 것이다. 그러나 나의 그림은 모델보다는 훨씬

덜 매력적이다. 그렇지만 그건 내 탓이 아니다.


여섯 살 적에 이미 어른들 때문에 화가의 꿈을 접어버린 후

나는 뱃속이 보이지 않거나 보이거나 하는 보아구렁이 외에는

그림 그리는 것을 배워본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난데없이 나타난 그 아이를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바라보았다.

여러분은 내가 지금 사람 사는 지역에서 수만 리

떨어진 곳에 홀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그런데 이 아이는 길을 잃은 것 같지도 않았고,

배고파서,

목말라서,

무서워서 죽겠다는 표정도 아니었다.


사람 사는 곳에서 수만 리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아이 같은 구석은 조금도 없었다.

이윽고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넌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니? "


그러자 그는 아주 중대한 일이기나 한 것처럼

아주 나직한 목소리로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부탁이야.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너무나 갑자기 놀라운 일을 당하게 되면 감히 거역할 생각을

못하는 법이다.

사람이 사는 지역에서 수만 리 떨어진 곳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는  처지에 너무나도 엉뚱하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나는 결굴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과 만년필을 꺼냈다.


그러나 곧 내가 배운 것은 지리, 역사, 산수, 문법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기분이 나빠진 목소리로)

난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괜찮아.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양은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에게 내가 그릴 줄

아는 단 두 가지 그림 중의 하나를 그려주었다.

뱃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구렁이의 그림 말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놀랍게도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냐, 아냐 ! 보아구렁이 뱃속의 코끼리는 싫어.

보아구렁이는 너무 위험해.  그리고 코끼리는 너무 거추장스러워.

내가 사는 곳은 아주 작은 곳이거든.

난 양을 갖고 싶어. 나, 양 한마리만 그려줘."


그래서 나는 양을 그렸다.

그는 양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안돼!  이 양은 벌써 병이 들어버렸는걸.

다른 걸로 하나 그려줘."


나는 다시 그렸다.

내 친구는 너그럽고 상냥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이 참.... 그건 양이 아니라 숫양이잖아. 뿔이 달렸으니까....."


그래서 나는 또 다시 그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앞의 것들과 마찬가지로 퇴짜를 맞았다.

"이건 너무 늙었어. 난 오래 살 수 있는 양이 갖고 싶어."


엔진을 분해하는 일이 급하기에 나는 아무렇게나

다음과 같은 그림을 끼적거려놓고는 그에게 한마디 툭 던져보았다.

"이건 상자야. 네가 원하는 양은 이 속에 있어."


그러자 어린 심판관의 얼굴이 환해지는 걸 보고 나는 몹시 놀랐다.

"내가 원하던 게 바로 이거야!

이 양한테 풀을 많이 줘야 할까?"


"왜 그런 걸 묻지?"

"내가 사는 곳은 아주 작거든."

"풀은 넉넉할 거야. 내가 그려준 건 아주 작은 양이니까."


그는 고개를 숙이고그림을 들여다 보았다.

"그다지 작지도 않은데 뭐......이런! 잠이 들었네."


이렇게 해서 나는 이 어린 완자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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