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심과 참회로 참선수행의 장애를 정화한다.
에고의 장난으로 수행자가 수행에 장애를 받는 경우가 많다.
에고의 장난은 교활해서 잘 살피지 않으면 속기 쉽고 벗어나기
어렵다.
'나 잘났다는 생각' '나' 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말미암아
신구의(身口意)를 통해 잘못된 행위를 하게 되고, 그것들의
반복은 습성이 되며 세력화 되어(업력이 되어) 수행을 방해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항상 겸손하게 자기를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순수한 삶의 흐름, 如如한 마음의 작용을 방해하고 있는
지난날의 잘못된 행위로 인해 세력화된 부정적 에너지를 정화해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하는 길이겠지만
화두공부가 잘 되도록 하는 바탕이 마련되기 위해서라도 하심과
참회수행은 필요하다고 본다. 자기를 성찰하고 자기를 비우는 하심과
공부와 부정적 에너지를 정화하는 참회공부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하심에 대해서 살펴보자.
행자시적부터 수행자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 입술이 닳도록
외우는 자경문에도 하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씀들이 나온다.
"그릇되이 스스로를 높이고 잘난체 하며 다른 사람을 업수이 여기지
말지니라."
"어진 마음을 닦아 어질게 됨은 겸손하고 사양하는 마음이 근본이
됨이라."
"교만은 슬기로움을 덮어버리고 잘났다는 그 마음은 무명만 키우니라."
"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마음씀은 더욱더 낮추어야 하리라."
"나 잘났다는 마음이 산처럼 높아지면 삼악도 나쁜 길로 더욱 깊이
떨어지고 겉모습은 존귀한 듯 하지만 안으로 공허하여 구멍 뚫린
배와 같아라."
"나 잘난 생각이 사라진 곳에 무위도는 저절로 이루어지니 마음을
낮추어 사는 자에게 온갖 복이 저절로 굴러 오리라."
인도에서 티베트로 건너가 티베트의 달마대사라 불리우는
아티샤존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겸허하라......
늘 비우고 낮게 살아야 할 때다....
헐떡임도 쉬지 못하면서 선사라 자처하지 말라....
죽을 때 후회할 거리를 만들지 마라."
하심공부에 대해 퇴옹성철선사의 법분을 들어보자.
좋고 영광스러운 것은 항상 남에게 미루고, 부끄럽고 욕되는 것은
남모르게 내가 뒤집어쓰는 것이 수도인의 행동이다.
육조대사가 말씀하셨다.
"항상 자기의 허물만 보고 남의 시비, 선악은 보지 못한다."
이 말씀이야말로 공부하는 사람의 눈이다.
내 옳음이 추호라도 있을 때, 내 허물이 태산보다 더 크다.
나의 옳음을 찾으려해도 찾을 수 없는 사람이라야 조금 철이
난 사람이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에서든지 전혀 내 허물만
보이고, 남의 허물은 보려해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세상 모두가 '내 옳고 네 그른 싸움'이니 내 그르고 네 옳은 줄 알면
싸움이 영원히 그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깊이 깨달아
'내 옳고 네 그름'을 버리고 항상 나의 허물, 나의 잘못만 봐야 한다.
임제종의 중흥조인 법연선사가 말씀하셨다.
"20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 공부하니, 이제 겨우 내 부끄러운 줄
알겠다."
7세에 출가하여 항상 법화경을 외웠다는 법달스님이 어느 날
혜능대사를 찾아와 절을 하였다. 그러나 법달스님의 머리가 땅에
닿지 않자 혜능대사가 물으셨다.
"절을 함에 있어 머리를 땅에 붙이지 않으니 절을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하구나. 정녕 네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있어 그러한
모양인데, 그 동안 네가 익혀온 것이 무엇이더냐?"
"예 법화경을 3천 번 외웠습니다."
"만약 법화경 만 번을 외워 경의 뜻을 모두 알았다고 하자.
네가 그것을 자랑으로 삼지 않으면 나와 더불어 함께 하려니와,
그일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면 모두가 허물이 될 뿐이다.
너는 그것을 모르는구나."
그리고는 게송을 읊어 법달스님을 깨우쳐 주셨다.
"절을 함은 본래 아만의 콧대를 꺽자는 것
어찌하여 머리가 땅에 닿지를 않는가
나(我)가 있으면 곧 죄가 생겨나고
공(功)을 잊으면 복이 비할 바가 없다네"
뉴튼은 천고의 큰 물리학자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훌륭하다고
많이 존경하였으나 뉴튼 자신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자기가 생각해 볼 때 자신은 대학자는 고사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인데, 왜 자기를 대학자로 취급하는지 궁금했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말하였다.
"우주의 진리는 대해 같이 넓고 깊다. 그러나 나는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이나 줍고 노는 어린아이에 불과하여,
진리의 바다에는 발 한 번 적셔보지 못했다."
지상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위대한 인물은, 오로지 모든 사람을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잘나지 못함을
자각하는 정도로 그 사람의 인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내가
내 잘나지 못함을 철저히 깨달아 일체를 부처님같이 섬기게 되면,
일체가 나를 부처님처럼 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장 낮고 낮은 곳이 자연히 바다가 되나니, 이것은 일부러
남에게서 존경을 받으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남에게서 존경받을 생각이 있으면,
남이 존경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내 몸을 낮추고 또 낮추어 밑 없는 곳까지 내려가니,
나도 모르게 몸이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더라."
하심하는 덕목을 몇 가지 말해보자면
*도가 높을수록 마음은 더욱 낮추어야 하니,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같이 존경하며 원수를 부모와 같이 섬긴다.
*어린이나 걸인이나 어떤 악인이라도 차별하지 말고
지극히 존경한다.
*낮은 자리에 앉고 서며 끝에서 수행하여 남보다 앞서지 않는다.
*음식을 먹을 때나 물건을 나눌 때, 좋은 것은 남에게 미루고
나쁜 것은 자기가 가진다.
*언제든지 고(苦)되고 천(賤)한 일은 자기가 한다.
주역의 점괘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하늘의 도는 꽉 찬 것을 일그러뜨려 겸손한 자에게 보태주고,
땅의 도는 꽉 찬 것을 변화시켜 겸손으로 흐르게 하며,
귀신은 꽉 찬 것을 해치고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며,
사람은 꽉 찬 것을 싫어하고 겸손한 자를 좋아한다."
이러한 까닭에 주역의 64괘 중 유일하게 겸괘(謙卦) 하나만이
여섯 효사(爻辭)가 모두 길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참회공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부처님께서는 대승본생심지관경에서 참회의 10종 공덕을 말씀하셨다.
1) 참회는 능히 번뇌(煩惱)의 땔감을 태우고
2) 참회는 능히 천상(天上)에 태어나게 하며
3) 참회는 능히 사선(四禪)의 樂을 얻고
4) 참회는 능히 마니보주(摩尼寶珠)를 내게 하며
5) 참회는 능히 수명을 금강(金剛)과 같이 늘이고
6) 참회는 능히 언제나 즐거운 상락궁(常樂宮)에 들어가게 하며
7) 참회는 능히 삼계(三界)의 감옥을 벗어나게 하고
8) 참회는 능히 보리(菩提)의 꽃을 피우며
9) 참회는 능히 부처님의 대원경지(大圓鏡智)를 보게 하고
10) 참회는 능히 가장 좋은 보소(寶所)에 이르게 한다.
육조스님은 참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셔다.
"과거의 생각과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생각마다
우치와 미혹에 물들지 않고, 지난 날의 나쁜 행동을 일시에
영원히 끊어서 자기의 성품에서 없애 버리면 이것이 곧
참회니라. 과거의 생각과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생각마다 어리석음이 물들지 않고 지난날의 거짓과
속이는 마음을 없애도록 하라. 영원히 끊음을 이름하여
자성의 참회라고 한다. 과거의 생각,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생각마다 질투에 물들지 않아서 지난날의
질투하는 마음도 없애도록 하라. 자기의 성품에서 만약
없애 버리면 이것이 곧 참회이니라.
무엇을 이름하여 참회라고 하는가?
참(懺)이라고 하는 것은 종신토록 잘못을 짓지 않는 것이요,
회(悔)라고 하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아는 것이다."
서산대사는
"허물이 있거든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불교의 참회는 크게 이참(理懺)과 사참(事懺)으로 나눈다.
이참은 깨달아서 진리와 하나되고 죄업의 실상이 공(空)함을
깨달아 참회를 이루는 것이다.
천수경에 나오는 다음 게송이 바로 이것을 말한다.
"죄의 자성 본래 없어 마음 따라 일어난 것(罪無自性從心起)
마음 만약 없어지면 죄업 또한 사라지네 (心若滅時罪亦亡)
죄도 업도 없어지고 마음 또한 공하여야 (罪亡心滅兩俱空)
이런 것을 이름하여 진참회라 하는도다" (是則名爲眞懺悔)
금강삼매경에 이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이 나온다.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게 하는 것을 참회라 하나이까?"
"진실관(眞實觀)에 들면 모든 죄가 사라지느니라."
이러한 부처님의 말씀을 원효대사는 보다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이 해설하셨다.
"모든 죄업은 망상으로부터 생겨나므로, 지금 모든 상(相)을
파하는 진실관에 든다. 그리하여 일체의 망상경계를 어느 때
일순간에 파하게 되면 모든 죄가 일시에 사라진다."
이와 같은 진참회는 앞서 말한대로 화두가 타파되어 견성을 하여
업식종자가 전부 소멸하여야만 되는 것이다.
사참은 위와 같은 진참회가 되기 위해서, 화두공부가 잘 되도록
하는 바탕을 마련하는 참회로서 과거와 현재에 지은 죄업과
미래에 짓게 될 죄업을 몸과 말과 마음을 다하여 참회하는 것이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는 이 참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선남자여, 또한 업장을 참회한다는 것은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과거 한량없는 겁으로 내려오면서 탐내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으로 말미암아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모든 악한
업이 한량없고 가이없어 만약 이 악업이 형체가 있는 것이라면
끝없는 허공으로도 용납할 수 없으리니, 내 이제 청정한 삼없으로
널리 법계 극미진수 세계 일체 불보살 전에 두루 지성으로 참회하되,
다시는 악한 없을 짓지 아니하고 항상 청정한 계행의 일체 공덕에
머물러 있으오리다' 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하여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면 나의 참화도 다하려니와, 허공계와
내지 중생의 번뇌가 다함이 없으므로 나의 참회도 다함이 없어
생각생각 상속하고 끊임이 없되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일에
지치거나 싫어하는 생각이 없느니라."
선문일송에보면 중국의 총림에서는 선원대중이 저녁일과로
108예참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문일송을 편찬하여 대중들에게 매일 108예참을 하도록 권하셨던
퇴옹성철선사도 노쇠하여 기력이 없으셔 절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순간까지 매일 108예참을 꼭 하셨다.
평생을 참선수행에만 몰두하며 사신 월인(月印)스님은 1980년대
중반 월명암 조실로 주석 하신 적이 있었다. 결제에 참여한
대중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세속에서나 절 집안에서나 알게 모르게 지은 악업들을
소멸시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견성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우리 선원에서는 참선수행과 함께 참회와 발원문 정진을
하도록 하자."
그리고 사부대중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법문을 하셨다.
"언제나 나는 참회하고 발원하는 마음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십의 나이에 내 손으로 빨래를 하고
생식(生食)을 하며 사는 것도 나의 덧없는 일생을 참회하고
간절한 발원의 마음을 다 잡아가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살아온 나날들과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을
때때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참회입니다. 돌아볼 줄
아는 사람에게는 헛된 망상의 끄나풀에 뒤엉켜 온갖 악업을
지어내는 흉한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진실로 참회합시다. 오늘날 세상이 살기 어려워진 것도 한때
정신을 못 차리고 들떠 살았던 시절의 업보가 아닙니까?
보다 나은 '내일'을 원한다면 그만큼 '어제'를 참회하고 지금
발원을 해야 합니다.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모든 죄업을 참회하고
청정수행에 힘써 나와 남이 다 성불할 수 있도록 발원하는
데서 밝은 내일의 해가 떠오를 수 있습니다."
간화선 수행의 바람직한 방향(지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