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
*최초의 생성은 텅빔에서 시작되었다*
好向此時明自己 百年光影轉頭非
(호향차시명자기 백년광영전두비)
이 좋은 시절에 뒤돌아보니 백년 자취도 순간이라.
모든 개체는 종족과 계통의 역사를 반복한다.
개체 발생 속에 우주의 역사가 담겨 있고,
개인의 자취가 담겨 있다.
너와 나, 우리 모두는 저 시원(始原)의 빅뱅부터 시작해
원소들이 결합과 분리를 무한히 반복하며 나온 흔적들이다.
서구의 형이상학에서는 존재의 근원에 '그 무엇'이 있다고 본다.
무에서는 무엇도 창출될 수 없기에
'그 무엇'은 곧 절재지존의 존재자,
곧 하나님과 같은 존재이다.
이처럼 무와 유를 이원론으로 보는 시각이 틀렸다.
붓다의 가르침에 심취한 서양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무는 부정(否定)보다 더 근본적이라고 본다.
따라서 유를 제고해 무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무는 현존재의 번뇌 속에 언뜻 나타나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 그 자체와 거리감을 느끼면서 경험된다.
이런 실존적 경험은 생경한 것으로 개체에만 매몰되었던 존재가
드디어 존재자들 모두에게로 포괄하는 무화적 회귀를 이룬다.
무화가 허무주의와 완전히 다른 까닭은 허무주의는 텅빔으로 머물지만,
무화는 공진을 위한 상호 돌봄의 과정이다.
무화회귀는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원래 텅빔에서 출발했다는 반성적 사유이다.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 - 이동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