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엄마 수업

사춘기, 지켜봐 주는 사랑

혜월(慧月) 2022. 11. 28. 12:21

엄마 수업

 

제1장 자식사랑에도 때가 있다

 

*사춘기, 지켜봐 주는 사랑

 

  옛날에 가난한 부모들은 아이가 어릴 때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해서 건강하지 못하거나 배울 기회를 주지 못한 것이 흠이었습니

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은 아주 잘 먹여서 아이들의 영양 상태가 좋고,

공부도 많이 시켜서 아이들이 아주 똑똑해요.

  그러나 문제는 아이가 사춘기가 되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어린애 짓

을 한다는 거예요. 이것은 부모가 아이의 자립 기회를 막고 아이 대신

다 해준 데서 비롯된 겁니다. 부모는 사랑을 준다고 한 것인데, 그게

오히려 아이를 망친 거예요. 아이를 나쁘게 키우려고 그런 게 아니라

아이의 성질을 몰라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모른 데서 비롯된 

거예요.

  사춘기 아이들은 특징이 있습니다. 어릴 때와 달리 감정과 생각이

자아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일어납니다. 인생을 회의적으로 생각하기

도 하고, 공부를 하다가 안 하기도 하고, 또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이성에 대해서 눈 뜨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이든 자기가 직접 해보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동안은 따라 배우기만 해서 부모가 시키는 대로 가라면 가

고 오라면 오고 말을 잘 들었는데, 사춘기가 되면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발로 걸어가면서 스스로 하려고 합니다. 주체의식이 생기는 거

예요.

  부모가 볼 때는 아이가 갑자기 말 안 듣고 반항하는 것처럼 느낄 수

도 있습니다. 전에는 "이거 뜨겁다, 만지지 마라" 하면 안 만졌는데 이

제는 부모가 "뜨겁다, 만지지 마라" 해도 아이는 손으로 살짝 만져 봅

니다. 그러고는 "앗, 뜨거워" 하면서 경험을 하는 거예요. 전에는 뜨거

운지 안 뜨거운지 확신을 못 했는데, 이제는 손을 대보면서 '아, 저것

은 뜨거운 거구나' 하고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단순히 부모의 말을 듣거나 책을 보고 배우는 게 아니라 자기가 중

심이 돼서 연구도 하고 경험도 하면서 알아가는 거예요. 또한 이성 친

구를 사귀어서 헤어지기도 하고 가슴앓이도 하면서 인간관계도 경험

해 갑니다.

  이럴 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지켜봐 주는 겁니다. 넘어지고 자

빠질 때마다 일으켜 세워 주는 게 아니라 옆에서 지켜봐 주는 거예요.

이 시기는 시행착오를 거듭해서 실패의 경험을 통해 자아가 성숙해지

는 때이니까 안타까워도 기다려 줘야 합니다.

  지켜봐 주는 것이 마치 부모 노릇을 안 하는 것처럼 생각되어 마음

이 불안할 수도 있고 마음도 아플 거예요. 하지만 자식을 위해서 인내

해야 합니다. 이때 지켜봐 주지 않고 간섭하면 아이는 결코 홀로 서지

못합니다.

  부모는 따뜻하게 보살핀다고 하지만, 아이는 자립하려는데 부모로

인해 방해받으니까 억압으로 느낍니다. 그러면 부모는 버둥거리는 자

식을 돌봐 주느라 힘들고, 아이는 부모의 억압 때문에 힘들어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하는 거예요.

  어릴 때 아이에게 이것저것 챙겨 주며 따듯하게 돌봐 주느라 힘들었

으니, 이제는 아이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면 돼요. 그러면 부모도

편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으니까 좋은 거예요.

  그런데 부모는 어릴 때 따뜻하게 보살펴 주던 게 습관이 되어서, 애

가 컸는데도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 사랑밖에 할 줄 모릅니다. 많은 부

모가 빠지는 함정이에요.

  옛날에는 어릴 때 잘 보살펴 주지 못한 대신에 사춘기 때 간섭하는 

것은 없었어요.

  지금 보모 세대만 해도 부모의 간섭 없이 사춘기를 잘 넘겼어요. 우

리 부모가 교육에 전문가라서 그 시기를 잘 넘겨 준 게 아니고 자식에

게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 놔둔 거예요. 사춘기 때 간섭하는 사람이 없

으니까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된 것입니다. 자립적으로 크니까 연애도 자기가 알아서 하고, 학

교도 자기가 알아서 가고, 직장도 자기가 알아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혼자 서야 할 시기에 부모가 감싸 버리니까 아이들이

몸만 컸지 여전히 어린애예요. 그래서 대학 가는 것도 혼자 선택하지

못해 부모가 선택해 주고, 결혼도 부모가 짝 맞춰 주고, 집도 사 주고,

직장도 부모가 여기저기 알아봐서 구해 주고, 애 낳으면 애 키우는 것

도 부모가 해주고, 이혼하면 손자도 데려와서 키워 줍니다. 그렇지 않

으면 결혼을 안 하고 계속 부모 밑에서 사는 자식을 돌보든지, 심지어

결혼을 해도 부모가 돌봐 주든지 합니다.

  그렇게 해서 부모는 죽을 때까지 자식을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

것은 자식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에요. 자식이 자립해야 할 시기에

내버려두지 않고, 연애할 때 연애 못하게 하고, 방황해야 될 시기에 방

황을 못하게 한 부모 탓입니다. 그 과보로 자식은 나약해지고, 부모는

늙어서까지 그 대가를 치르는 거예요.

  부모가 자식의 자립을 막으면 자식은 반항을 하지만 그렇다고 자립

도 못합니다. 자립하려는 것을 막았으니 반항심은 생기는데 막상 어

떻게 스스로 서야 할지를 모르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부모에 대한 고

마움은 없고 원망만 가득해요. 결국엔 자립을 못하니까 자식은 부모

에게 의지해 버립니다.

  야생동물은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다 자립을 하기 때문에 알아서 삽

니다. 그런데 집에서 너무 오래 길들이고 계속 먹이를 주면 어떻게 될

까요? 나중에 풀어 줘도 못 나가고 도로 집으로 돌아옵니다. 내쫓아도

돌아와요. 나가서 사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으니까요.

  인간도 마찬가지로 자식을 보호하고 감싸기만 하면 죽을 때까지 자

식의 짐을 지고 가야 합니다. 따라서 어릴 때 자식이 자기 생각이나 주

체의식도 없이 부모 말을 잘 듣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게 아닙니다. 그걸

알아야 해요.

  중학생 정도 나이가 되면 인격적으로 존중하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화를 설득의 수단으로 삼거나 부모의 말을 강압적으로

따르게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얘기를 한번 해보는 거예요.

  "공부하기 싫어?"

  "네."

  "엄마 아빠도 그때는 공부하기 싫었지."

  "진짜요?"

  "그럼."

  사실 이해가 되잖아요. 시험을 치르기 위해 공부하는 게 좋을 게 뭐

있겠어요. 그러니까 아이를 이해하면서, 자신의 옛 시절도 돌아보면

서 대화를 하는 게 좋아요.

  "그래도 대학은 가고 싶어?"

  "가기 싫어요."

  "그러면 뭐하고 싶어?"

  아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진로를 열어 주면 됩니다. 만약 대

학에 가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돼요.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 가고 싶어, 아무 데나 가고 싶어?"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요."

  "그러면 우리나라 교육 제도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갈 수 있어.

안 그러면 갈 수가 없으니까. 공부하기 싫으면 좋은 대학 갈 생각은 포

기하는 게 좋아."

  무조건 공부해라, 좋은 대학 가라, 이야기할 게 아니라 아이가 스스

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

가야 합니다.

  자식의 미래를 위한다며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면 아이는 반발해서

튕겨나가 버립니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스스로 알아서 살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부모는 다만 지켜보면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뿐이에요.
  자식이 다 컸는데도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이 맘대로 하지 못하게 하

고 누르는 것은 집착이에요. 어려서 돌봐 줘야 할 때 돌보지 않으면 그

것이 병이 되고, 다 큰 후에 자꾸 간섭을 하면 억압 심리가 생겨 저항

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조금 힘들더라도 가능하면 자녀가

스스로 경험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게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에요.

어떤 일이든 지켜보다가 세 번, 네 번 문제가 반복되면 그때 주의를 주

는 게 좋습니다. 아이가 시행착오, 즉 실패한 경험을 갖게 하고 그 과

정에서 뭔가 자각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해요.

 

                                              엄마 수업 --------- 법륜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