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경쟁을 위해 수반되어야 할 것들*
가장 빠른 토끼와 가장 느린 거북이의 경주에서
토끼의 방심으로 거북이가 이긴다는 이야기
*토끼와 거북이*
자존심 센 거북이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인내심도 대단했고
포기를 모르는 성격이었죠. 그는 수많은 동물 중에 거북이가
제일 느리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달리기 연습
을 하다 보면 자기보다 더 늦게 달리는 동물이 눈에 띌 때도
있었거든요. 그 동물이 매번 달랐기에 누구라고 콕 짚어 말할
순 없었지만요.
어느 날 거북이는 중대한 결심을 했습니다. 거북이가 세상에
서 제일 느리다는 편견을 깨뜨리고자 토끼와 달리기 경주를 하
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토끼는 자타공인 가장 빨리 달리는 동물
중 하나였으니, 그런 토끼와 경주해서 이긴다면 거북이에 관한
편견을 깰 수 있었으니까요. 일생일대의 모험을 감행한 셈이었
습니다.
"야, 토끼야! 우리, 날 정해서 달리기 시합 한 번 하자. 누가
빠른지 겨뤄보자 이거야."
토끼는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느닷없이 찾아온 거북이가
자기와 경주를 하자고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더위를 먹거나 충격을 받아 머리가 이생해지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자신과 경주해서
이긴 동물이 없다는 건 상식이었으니까요.
토끼는 거북이의 가당치도 않은 제안을 무시했습니다. 아무리
양보해서 생각해봐도 거북이와 경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기
는 건 당연지사였기에 거북이보다 빨리 달렸다고 해서 생색낼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만에 하나, 그럴 리는 없지만, 정말로 만에 하나 거북이에게 지는
일이라도 벌어지면 개망신도 그런 개망신이 없을 겁니다. 너무
나도 창피해서 동물계를 떠나 바닷속으로 숨어버리거나 공중으로
사라져버려야 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거북이의 요청은 집요했습니다. 매일같이 찾아와 도전
장을 내밀었습니다.
"정말 너 때문에 못 살겠다. 그래 하자 해. 경주하자고!"
토끼는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거북이와 토끼의 희한한 경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워낙 이상한 경주였기에 숲속에 있는 거의 모든 동물이 시합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숲속이 시끌벅적했습니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 토끼는 쏜살처럼 달려 나갔습니다. 거북이는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지만 앞서가는 토끼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
었습니다. 한참을 달리던 토끼는 거북이가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어지자 심심해졌습니다. 이런 시시한 경주를 왜 하나 싶었던 거죠.
토끼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나무 아래 누워 한숨 푹 자고
일어났습니다. 그런데도 거북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토끼는 이번엔 맛있는 풀로 허기를 채운 뒤 다른 동물들과
어울려 수다삼매경에 빠졌습니다. 마침 그중 예쁜 암토끼도
있었기에 자신의 재능과 입담을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습니다. 거북이는 잠시도
쉬지 않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느린 걸음을 재촉했지요. 마침내
결승점이 눈앞에 보였습니다.
너무 지체했다는 걸 깨달은 토끼가 전속력으로 내달렸지만,
이미 거북이는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동물이
지켜보는 앞에서 제일 느린 거북이가 제일 빠른 토끼와의
경주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공정한 경쟁을 위한 장치가 필요한 이유#
유치원생도 다 아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도 자만하고 나태하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얼마
든지 뒤처지고 패배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비록 여건이나 환
경이 좋지 않더라도 꿈과 의지를 갖고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 사
람에겐 그만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교훈도 담겨 있습니다.
토끼가 달리기를 잘하는 건 본인의 노력과 상관없이 태생적으로
주어진 능력입니다. 거북이가 느린 것 또한 본인의 잘못이거나 게
으른 탓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주어진 능력에 의해 삶과 운명이 결
정된다면 애써 노력하고 땀 흘리며 도전을 거듭하면서 살 필요가
없습니다. 이 우화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애초부터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란 공정
한 경쟁일 수가 없습니다. 정상적으로 달리기를 했다면 토끼는 백
전백승이고 거북이는 백전백패였을 테니까요. 거북이는 죽었다 깨
어나도 토끼를 이길 수 없습니다. 토끼가 경주 중 딴짓을 하고 자
만과 나태에 빠져 시합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을 때라야만
겨우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일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공정한 경쟁
이라면 토끼는 토끼끼리, 거북이는 거북이끼리 경주해야 마땅합니
다. 만약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한다면 둘의 신체 조건이나 평균 속
도 들을 고려해 공정한 장치를 마련한 뒤에 경주해야 합니다 우화
에서처럼 아무런 공정 장치 없이 같은 선에서 출발하고 같은 결승
선이 주어지면, 불공정 경쟁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공정입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토끼 혹은 거북이로 태어난 것까지야 어쩔 수 없더라도 공정 장치
가 전혀 없는 상태로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한다는 건 도저히 받아
들일 수가 없는 겁니다.
대학 입시나 기업체 입사, 내 집 마련이나 자녀 출산 등 삶의 요
소요소에서 금수저와 흙수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기 어렵습니다. 금
수저는 날 때부터 특정 계급, 화려한 가문, 천부적 재능, 엄청난 재
산 등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흙수저는 이런 게 하나도 없이 태어
난 사람들이고요. 토끼와 거북이인 셈이죠.
흙수저가 자수성가해서 금수저보다 나은 삶을 살려면, 즉 경주
에서 이기려면 금수저의 자만과 나태 또는 타락과 자멸에만 기대
선 안 됩니다. 금수저가 자만과 나태에 빠지지 않고 성실히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면 흙수저는 금수저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을 테
니까요.
그래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다양
하게 필요한 겁니다. 적어도 출발선에 섰을 때 경주에 참여한 사람
들이 누구나 공정하다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결승선에 도달할
가능성을 가슴에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토끼도 거북이도 서로 자신을 투사한다#
병원을 방문한 환자들과 상담하다 보면 자신이 [이솝우화]에 나오
는 거북이 같다며 한탄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워낙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타고난 재능조차 발휘하지 못한 채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하소연입니다.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몸도 마음
도 황폐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우화 속 거북이처럼 토끼를 따돌리
고 결승선을 먼저 통과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토
로합니다. 워낙 애절한 사연들이라 듣기만 해도 안타까울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는
서로 자신을 투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투사(投射,projection)'란 받아들일 수 없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태도 등에 대해 그 원인을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돌리는 심리적
현상을 가리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 같은 감정을 타인에게
돌림으로써 현실을 부정할 수 있는 방어기제로 작동하는 것이죠.
토끼는 거북이를 보면서 무능력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합니다. 그
러나 그런 거북이를 보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무능력하고 게으
른 면모를 보기도 합니다. 그 순간 토끼는 거북이를 미워하게 되는
것이죠.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하게끔 궁지로 몰아넣고 싶어집니다.
거북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끼처럼 빠르고 민첩하지 못한 자신
을 보며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토끼와 똑같은 조건으로 경
주하겠다고 마음먹은 것 자체가 비이성적입니다. 거북이는 어떻게
든 토끼를 이겨보려는 영웅 심리의 소유자이자 현실을 망각한 몽
상가처럼 보입니다. 불안에 사로잡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토끼도 거북이도 다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습니다.상대방
에게 그걸 투사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토끼는 거북이와의 경주에서 패함으로써 씻을 수 없는 치욕과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거북이 역시 죽을 만큼 힘들었던 경주를 통
해 제대로 된 경주였다면 토끼를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
을 겁니다.
흙수저가 보기에 금수저는 구름 속 세상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금수저에게도 타인에게 투사하고
싶은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 같은 감정들이 있습니다.
흙수저 또한 고단함과 열등감과 패배감 속에 짓눌려 살아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성취와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저는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이렇게 이해합니다.
당신은 토끼인가요? 아니면 거북이인가요?
당신이 토끼라면 거북이와 경주하기 전에 이렇게 제안하는 건
어떨까요?
"공정한 경주를 위해 나는 10km를 달릴 테니 너는 100m만 달
리도록 해."
당신이 거북이라면 토끼와 경주하기 전에 이렇게 제안하는 건
어떨까요?
"출발선과 결승선은 똑같이 하되 들판이 아닌 강이나 바다에서
경주하는 건 어때?"
**요즘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공정이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토끼 혹은 거북이로 태어난 것까지야
어쩔 수 없더라도 공정한 장치가 전혀 없는 상태로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한다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