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성전
제3편 대승경전
제7장 마음과 생각
마음은 돌려 보낼 수 없다.
아난다가 가르침을 듣고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미묘하고 밝은 마음이 원래
원만하고 상주(常住)하는 것임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부처님의 설법하는 음성을 듣고 또 이렇게
뵙는 것은 반연하여 일어나는 마음(緣心)입니다. 미묘하고
밝은 마음을 얻었다고 하나 그것이 본래의 심지(心地)라고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자비를 베푸시어 의심의 뿌리를 뽑아
버리고 위없는 도에 들어가게 하여 주십시오.]
부처님이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반연하는 마음으로 법문을 듣기 때문에 이 법문도
또한 연(緣)이 되어 법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 보일 때,
곁에서는 그 손가락을 통해 달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손가락을 보고 달이라 한다면 그는 달만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손가락마저 보지 못한다. 또한 손가락만
모르는 것이 아니고 밝은 것과 어두운 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가리키는 손가락을 달의 밝은 성질이라 하기
때문이다. 밝은 것과 어둔 것을 둘 다 모르는 너도
그와 같다.
만일 설법하는 음성을 분별하는 것을 네 마음이라 한다면
그 마음이 분별할 음성을 떠나서도 분별하는 성품이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나그네는 여관에 투숙할 때
잠깐 쉬었다가 곧 떠나 끝까지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나 여관 주인은 떠나지 않으므로 주인이라 하는 것과
같다. 이것도 그와 같아서 참으로 네 마음이라면 떠남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음성을 떠나서는
분별하는 성질이 없겠느냐. 이런 것이 어찌 음성을
분별하는 마음뿐이겠느냐. 내 얼굴을 분별하는 것도
빛이나 형상을 떠나서는 분별하는 성품이 없다. 이와 같이
대상 세계를 떠나 분별하는 성품이 없다면 너의 심성이
모두 각각 돌려보낼 데가 있으니 주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
[만일 저의 심성이 각각 돌려보낼 데가 있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미묘하고 밝은 본래의 마음은 어째서 돌려보낼
데가 없습니까?]
[자세히 들어라. 이제 너에게 돌려보낼 데 없음을 보여 주겠다.
이 큰 강당에 동쪽이 환히 열리어 해가 뜨면 밝게 비추고,
구름낀 그믐밤은 어둡고, 창틈으로는 트임을 보고, 담장에서는
막힘을 보고, 분별한 곳에서는 연(緣)을 보고, 허공은 빈 것이요,
바람이 불어 먼지가 날면 흙비가 오는 것이요, 맑게 개어 구름이
걷히면 맑음을 보게 된다.
아난다, 네가 이 여러 가지 변화하는 모양을 보았으니 내가
이제 본래 관계된 곳으로 돌려보내겠다. 어디가 본래 관계된
곳인가. 이 여러 가지 변화에서 밝은 것은 해에 돌려보낸다.
해가 없으면 밝지 못하기 때문에 밝은 인(因)은 해에 있다.
그러므로 해에 돌려보낸다. 어둠은 그믐밤에 돌려 보내고,
통함은 창틈으로, 막힘은 담장에, 연(緣)은 분별에, 허공은 빈 것에,
흙비는 먼지에, 맑은 것은 갠 데에 제각기 돌려보낸다.
세간의 온갖 것이 이런 종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네가 이 여덟 가지를 보는 *견(見)의 밝은 성질은 어디로
돌려보내겠느냐? 만일 밝은 데로 돌려보낸다면 밝지 아니할
때는 어둠을 보지 못해야 한다. 비록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여러 가지로 차별되나 견은 차별이 없다. 돌려보낼 수 있는
것은 네가 아니지만, 돌려보내지 못하는 것은 네가 아니고
누구이겠느냐. 그러므로 네 마음이 본래 미묘한 것을 잃어버리고
윤회하면서 생사 속에서 항상 떠다님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너를 가엾다고 한 것이다.]
< 수 능 엄 경 二 >
*견(見): 참 마음을 가리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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