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성전 352

불교 성전 - 319

불교 성전 제5편 조사어록 제5장 육조의 법문 마음이 밝아야 경을 알 수 있다 법달(法達)은 홍주(洪州) 사람인데, 일곱 살에 출가하여 항상 법화경(法華經)을 읽었다. 어느 날 조사(祖師)에게 와서 절하는데 머리가 땅에 닿지 않았다. 조사가 꾸짖어 말했다. [그렇게 머리 숙이기가 싫으면 무엇하러 절을 하느냐. 네 마음속에 필시 무엇이 하나 들어 있는 모양인데 무엇을 익혀 왔느냐?] 법달이 대답했다. [법화경을 외우기 이미 삼천 독에 이르렀습니다.] [네가 설사 만 독을 하여 경 뜻을 통달했다 할지라도 그것을 자랑으로 여긴다면 도리어 허물이 된다는 걸 모르는구나. 내 게송을 들어보아라. 절이란 본래 아만을 꺽자는 것 어째서 머리가 땅에 닿지 않는가 라는 게 있으면 허물이 생기고 제 공덕 잊으면 복이 한량없..

불교 성전 2022.03.17

불교 성전 - 318

불교 성전 제5편 조사 어록 제5장 육조의 법문 삼귀의 네 가지 큰 서원을 발한 이는 불. 법. 승의 자성 삼보 (自性三寶)에 귀의하여라. 불이란 깨달음이고 법이란 올바름이며 승이란 청정함이다. 마음이 깨달음에 귀의하여 그릇되고 어두운 것을 내지 않고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하게 생각하여 재물과 색을 떠나면 이것이 양족존(兩足尊)이다. 마음이 올바름에 귀의하여 그릇된 소견이 없으면 남과 나를 따지는 일도, 탐욕과 애욕에 빠지는 일도 없을 것이니 이것이 이욕존(離欲尊)이다. 그리고 마음이 청정에 귀의하면 온갖 지저분한 것과 애욕에 물들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중중존(衆中尊)이다. 이와 같이 수행하는 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인데, 범부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밤낮으로 삼귀계(三歸戒)를 받는다고 한다. 만약 부처..

불교 성전 2022.03.16

불교 성전 - 317

불교 성전 제5편 조사 어록 제5장 육조의 법문 사홍서원 이미 참회하였으니 이제는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발해야 한다. [내 마음의 중생이 끝없어도 건지리이다. 내 마음의 번노가 다함없어도 끊으리이다. 내 마음의 법문이 한 없어도 배우리이다. 내 마음의 불도(佛道) 위없어도 이루리이다.] 중생을 건진다 함은 내가 그대들을 건진다는 것과 같은 뜻이 아니다. 마음속의 중생이란 삿되고 어두운 생각, 망녕되고 진실하지 못한 생각, 착하지 못한 생각, 질투하는 생각, 악독한 생각, 이와 같은 생각이 모두 중생인 것이다. 저마다 자기 마음을 스스로 건지는 이것이 참으로 건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자기 마음을 스스로 건질 수 있을까. 자기 마음속의 그릇된 소견과 번뇌와 무지를 바른 견해로써 건진다. 바른 견해는 지혜..

불교 성전 2022.03.15

불교 성전 - 316

불교 성전 제5편 조사 어록 제5장 육조의 법문 무상 참회 이제 너희에게 무상 참회(無相 懺悔)를 주어 삼세의 죄과를 없애고 몸과 말고 생각의 세 가지 업을 청정하게 할 것이니 나를 따라 이와 같이 부르라. [제가 순간순간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데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이전부터 지어 온 나쁜 짓과 미련한 죄를 모두 참회하오니 단번에 소멸하여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 제가 순간순간마다 교만하고 진실치 못한 데에 물들지 않게 하소서. 이전부터 지어온 나쁜 짓과 교만하고 진실치 못한 죄를 모두 참회하오니 단번에 소멸하여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 제가 순간순간마다 질투에 물들지 않게 하소서. 이전부터 지어온 나쁜 짓과 질투한 죄를 모두 참회하오니 단번에 소멸하여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 이것..

불교 성전 2022.03.14

불교 성전 - 315

불교 성전 제5편 조사어록 제5장 육조의 법문 오분 법신향(五分法身香) 이 일은 모름지기 자성(自性)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니, 어느 때든지 순간순간 그 마음을 밝혀 스스로 닦고 스스로 행하면 자기의 법신을 보고 자기 마음의 부처를 보아 스스로 건지고 조심할 것이다. 먼저 자성의 오분 법신향(五分法身香)을 전할까 한다. 첫째는 계향(戒香)이니, 자기 마음속에 그릇됨이 없고 악독함이 없고 질투와 탐욕과 성냄이 없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정향(定香)이니, 여러 가지 선악의 환경을 보더라도 마음이 어지럽지 않음이다. 셋째는 혜향(慧香)이니, 자기 마음에 거리낌이 없어 항상 지혜로써 제 성품을 비춰보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할지라도 자랑스런 마음이 없으며, 손위를 공경하고 손아래를 생각하며 외롭고 가..

불교 성전 2022.03.13

불교 성전 - 314

불교 성전 제5편 조사 어록 제5장 육조의 법문 좌선과 선정 좌선(坐禪)은 원래 마음에 집착함도 아니고 청정에 집착함도 아니며 또한 움직이지 않음도 아니다. 만약 마음에 집착하는 것이라면 마음이 본래 망녕된 것이므로 알고 보면 환(幻)과 같아 잡을 데가 없다. 청정에 집착하는 것이라면 사람의 성품이 본래 청정한 것인데 망념(忘念) 때문에 진여가 파묻힌 것이니, 망념만 없으면 성품이 저절로 청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일으켜 청정하게 한다 함은 도리어 청정한 망념을 내는 것이 된다. 망념이란 처소가 없으니 조촐한 티를 내어 공부한다 함은 도리어 조촐한 데 얽매어 제 본성을 막는 일이 된다 만약 움직이니 않음을 닦고자 한다면,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 남의 시비와 선악과 허물을 보지 말 것이니, 이것이 곧..

불교 성전 2022.03.12

불교 성전 - 313

불교 성전 제5편 조사 어록 제5장 육조의 법문 무념 무상 무주 본래 바른 가르침에는 돈(頓)과 점(漸)이 없다. 사람의 바탕에 총명하고 우둔함이 있어 우둔한 사람은 차츰 닦아가고 총명한 사람은 단박 깨닫는다. 그러나 스스로 본심을 알고 본성(本性)을 보면 차별이 없다. 그러므로 돈이니 점이니 하는 것은 헛이름을 붙인 것이다. 내 이 법문은 위로부터 내려오면서 먼저 무념(無念)을 세워 종(宗)을 삼고,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고, 무주(無住)로 본(本)을 삼았다. 무상이란 상(相)에서 상을 떠남이요, 무념이란 염(念)에서 염이 없음이요, 무주란 사람의 본성이 선하거나 악하거나 밉거나 원수거나 간에, 서로 말을 주고 받거나 좋지 못한 수작을 걸어 오더라도 모두 다 헛것으로 돌려, 대들거나 해칠 것을 ..

불교 성전 2022.03.11

불교 성전 - 312

불교 성전 제5편 조사 어록 제5장 육조의 법문 일행삼매 일행삼매(一行三昧)란 가고 멈추고 앉고 눕고 간에 항상 곧은 마음을 쓰는 일이다. 그러므로 유마경(維摩經)에 말씀하기를 [곧은 마음이 도량이며, 곧은 마음이 정토(淨土)다] 라고 한 것이다. 마음으로는 아첨하고 굽은 짓을 하면서 입으로는 곧은 체하거나, 입으로는 일행삼매를 말하면서 마음은 곧지 않게 하지 말라. 곧은 마음으로 행하여 모든 것에 걸리지 말라. 어리석은 사람은 *법상(法相)에 집착하여 일행삼매를 가리켜 말하기를, 가만히 앉아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무정(無情)과 같아서 오히려 도(道)를 막는 인연이 된다. 도는 반드시 통하여 흐르게 해야 하는데 어찌 도리어 막히게 할 것인가. 마음이 무엇에고 걸리지 않으면 도가 곧 ..

불교 성전 2022.03.10

불교 성전 - 311

불교 성전 제5편 조사 어록 제5장 육조의 법문 정혜 내 이 법문은 정혜(定慧)로써 근본을 삼는다. 그러므로 정과 혜가 다르다 하지 말아라. 정과 혜는 하나요 둘이 아니다. 정은 혜의 본체요, 혜는 정의 작용이다. 곧 혜 안에 정이 있고 정 안에 혜가 있는 것이니, 만약 이 뜻을 알면 곧 정과 혜를 함께 배운다.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먼저 정이 있고서야 혜가 나온다거나, 혜가 있은 뒤 정이 나온다거나 하여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이런 소견을 가지는 자는 법에 두 모양을 두는 것이다. 입으로는 착한 말을 하면서 마음은 착하지 않은 것이다. 스스로 깨달아 닦아 나감에는 말다툼이 있을 수 없다. 만약 앞뒤를 다툰다면 곧 어리석은 사람과 같으므로 승부가 끝이 없어, 도리어 아(我)와 법(法)만 늘어서 ..

불교 성전 2022.03.09

불교 성전 - 310

불교 성전 제5편 조사 어록 제5장 육조의 법문 반야 보리(菩提)와 반야(般若)의 성품은 사람마다 본래 가지고 있지만, 마음이 어두워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아 자성(自性)을 보아야 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의 불성(佛性)은 본래 차별이 없으나 다만 막히고(迷) 트임(悟)이 같지 않으므로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이 있게 된 것이다. 내 이제 마하반야바라밀 법을 말해 그대들에게 각기 지혜를 얻게 할 거이니 정신차려 잘 들어라. 세상 사람들이 입으로는 종일 반야를 말하면서도 자성 반야 (自性般若)는 알지 못하니, 마치 먹는 이야기를 아무리 해봐도 배부를 수 없는 것과 같은 일이다. 입으로만 공(空)을 말한다면 만겁을 지나더라도 견성(見性)할 수 없다. 마하반야바라밀은..

불교 성전 2022.03.08